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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소통하는 언어가 바뀌었다. 내가 바뀌어야 한다.

40대 불혹의 MZ세대 영국 청년들과 공부하며 배우는 좌충우돌 이야기

by 세반하별

오늘은 영국 청년들과 함께 하는 칼리지 디지털 마케팅 수업 4주 차.

지난주 뭔지 감이 잡히지 않는 주제를 얘기하는데 그마저도 온라인 수업이다 보니 허둥대고 난 후, 선생님께 기본부터 닦을 수 있는 책을 추천받아 읽고 간다. 말 그대로 소화되지 않은 스테이크가 위장에 딱 걸쳐진 것처럼 답답한 마음이다. 동기들 중 내가 우리 그룹에서 제일 연장자다. 다들 젊고 인터넷 세상에서 자유자재로 노는 말 그대로 MZ세대 친구들이다. 시작했으면 포기는 없는 나에게 특별한 방법이 없다. 결론은 안면몰수 들이대기 그리고 닥치고 배우기 정신뿐이다.


이번 주는 대면 수업이 있다. 조금 늦는 학생을 기다리던 중에 사담을 나눈다. “전 무슨 말인지 몰라서 읽고 또 읽고 있어요. 이런 사례가 있는데 이런 수치는 어떻게 읽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어요.” 담당 튜터는 “네가 지금 말하는 것이 다음 주 주제야” 그러십니다. “잘 들어봐. 네가 인터넷 세상에 익숙하지 않아 용어나 툴 사용이 서툰 것이지, 지금 맥락은 바로잡고 있어. 생각해 봐. 디지털 마케팅은 콘텐츠이고 너는 그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소재들이 많아. 이제 그것을 세상에 끌어내면 돼. 잘하고 있어” 옆에서 게임 산업 전반에 타깃 포인트 관련 청산유수처럼 떠드는 아이만큼이나 나도 잘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시니, 눈물 나게 고맙다. 요즘 보니 배움에서 선생님이 꼭 필요한 이유는 지식을 나눠주는 것보다는 용기를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수업시간 한 시간 정도 개괄적인 설명이 끝나고 나면 나머지 3시간은 직접 해보는 실습이고, 나머지는 질문이다. 영국 칼리지는 가르치는 것보다는 그저 방목 형태의 주워 먹을 테면 드셔보시라 분위기다. 먹여주는 사람 없으니, 내가 찾아 먹어야 굶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평소에 나는 웬만하면 직접 매장에 가서 물건을 구매하는 편이다. 소비 패턴상 개인 정보 노출이 적을 것이다 생각했던 예상과는 달리, 내가 속해 있는 앱이나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나 자신보다 내 성향을 더 잘 분석해 놓았다. 이건 누가 나도 모르는 사이 몸에 GPS 부착해 놓은 셈이다. 쇼핑 사이트뿐만 SNS들도 마찬가지다. 예전 IT업계 엔지니어 친구가 페이스북 딱 끊으면서 했던 말이 이거였구나 이제야 이해하고 있다. 이런 알고리즘을 만드는 이들은 치열하게 사람을 분석해서 마케팅 수요 예측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마련해 놓았다. 디지털 마케팅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내가 마케팅을 특히 디지털 마케팅을 힘들어하는 이유를 오늘 알았다. 마케팅의 기본 중의 기본은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그들이 필요한 적재적소에서 도울 수 있는 아이템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얼굴 보고 이미 성향을 아는 사람의 니즈를 찾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서비스를 찾는 것이다. 결론은 마음을 읽어내는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 세상을 이해하는 시선의 방향을 바꾸는 수업을 듣고 있으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제2의 언어인 영어가 주로 사용되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정말 끊임없는 공부를 요구하는 일이다. 다시 단어장을 손에 들고 하루에 만나는 마케팅 관련 새로운 단어들을 적기 시작하는데, 며칠 만에 빼곡하다. 아이고, 신세한탄이 절로 나오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내 인생인 것을.


나에게 마케팅, 특히 디지털 마케팅은 여전히 계란으로 바위치기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어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자본에 자신의 아이디어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일을 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어쩌면 돈도 벌 수 있는 세상. 디지털 세상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또 다른 인생 기회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포인트를 찾아내는 것이 마케팅의 찐 매력이라고 수업 중에 강조하신다. 설명과 함께, 디지털 세상을 많이 접하고 배우면서 생각의 크기를 넓히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흡수한다. 계란이 아니라 짱 돌멩이라도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에 매달려 보자 오늘도 다짐해 본다.


세상과 소통하는 언어기 바뀌었다. 내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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