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머물게 될 공유숙박 숙소에는 환영 음식으로 음료와 함께 리스본 특산물 에그타르트(현지명 파스텔 드 나타 Pastel De Nata)가 놓여 있다. 오래 전 처음 에그타르트를 맛본후, 나는 계란 들어간 달달한 음식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랜 여행으로 지친 때문일까. 오늘 에그타르트는 한 입을 베어무니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선입견으로 계란 노른자의 비린내가 나지 않을까 의심을 품었으나, 한 입으로는 만족되지 않을 만큼 맛있다. 우리는 집 근처 가장 오래되고 유명하다는 가게를 찾아가 보기로 한다.
포르투갈 리스본 파스텔 드 나다 전문점 모습 @김명주
요즘 여행객들은 지역 유명한 음식점이라면 어떻게 다들 알고 모여 있다.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대기 시간 족히 한 시간은 걸릴 것 같다. 유럽사람들의 장점은 기다림에 조바심이 없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은 서로 담소를 나누며 웃고 떠들거나 책을 읽는 모습이 여유롭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만한 인내심이 없다. 근처 다른 집을 찾아본다.
반경 안에 에그타르트 집들이 제법 많다. 다들 원조라고 붙여 놓았는데, 이쯤 되면 공신력은커녕 그냥 선전문구 정도려니 해야 맞다. 그중 백 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가게도 있다. 이쯤 되면 원조 가게가 아니면 어떠리 싶기도 하다. 옆 블록의 귀퉁이 자그마한 에그타르트 집이 눈에 띈다. 몇 팀 줄 서 있지만 그 정도는 감내하며 순서를 기다린다.
마침내 차례가 되었다. 기다림의 시간을 견딘 딸들은 욕심껏 두 개씩 먹겠다고 나선다. 노란 에그타르트 위에 골든크러스트,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한 입 베어무니 지리시간 배운 지층 단면 마냥 여러 겹으로 겹쳐진 페이스트리가 바삭 바스러진다. 그 중간에 계란 무스는 비릿한 냄새 없다. 너무 무겁지도 절대 가볍지도 않은 계란 크림맛이 무척 부드럽다.
직접 빵이나 페이스츄리를 구워보면 안다. 이 얼마나 깊은 내공인지 말이다.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더니 나는 눈 깜짝할 사이 두 개를 다 먹고는 더 있으면 또 먹을 수 있겠다 싶다.
The origin of egg tarts | Compadre Cooking School
에그타르트는 13세기 리스본에 있는 한 수도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수녀들이 빨래를 하면서 계란 흰자만을 사용했다는데, 남은 노른자를 모아다가 수도승들이 페이스트리 위에 계란 반죽을 얹어 구워 먹은 것이 시작이었다고 전해진다.
18세기 포르투갈은 뛰어난 해상력을 바탕으로 아시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현재 중국 광둥성에 첫 기착했고 이후 마카오와 홍콩에 상륙, 포르투갈의 에그타르트를 전파했다. 중국식 에그타르트는 페이스추리 위에 계란반죽을 얹는 것은 포르투갈의 그것과 같다. 계란의 맛이 더 진하고 페이스트리는 바삭하나 포르투갈식 페이스추리보다는 좀 더 묵직하다. 한 끼 간식으로 손색이 없다.
말레이시아 말라카 도심 포르투갈식 건축물 @김명주
내가 살던 말레이시아에는 말라카(Malacca)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은 유럽에서 인도, 중국, 일본으로 향하는 뱃길의 중간쯤이라 교역항으로 손색이 없었다. 포르투갈이 먼저 식민 지배를 시작했고 이후 네덜란드, 영국에 의해 통치되다가 1957년 독립했다. 초기 식민지 건설하면서 포르투갈식 붉은 갈색 건물들을 세웠고, 운하를 중심으로 양방향으로 집들을 지었다. 영국식 문화 잔재가 많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곳은 포르투갈의 색이 강하게 남아 있어 이색적이다. 덕분에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2017년 아이들과 여행으로 말라카 시내를 걸어 다니다가 잠깐 쉬러 카페에 들어선다. 포르투갈 남편과 말레이시아 아내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리스본에서 퇴직 후 말라카에서 새 삶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이곳 에그타르트는 홍콩에서 먹어본 맛과 비슷하다고 하니 주인장 여인이 에그타르트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말레이시아 말라카 수로 주변, 유럽의 도시 모습과 비슷하다@김명주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은 19세기 중국 남부 민중봉기를 피해 이주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하카(Hakka)라는 중국 남부 방언을 사용하는데, 북경어, 홍콩어와 달라 서로 소통이 힘들다고 한다. 중국남부는 농민들이 살던 곳으로 내전과 해상권력을 얻고자 하는 외세 침략으로 부침이 있던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고 전한다.
자신이 만든 이 에그타르트는 할머니에게서 배운 마카오식에 자신이 포르투갈 현지에서 살면서 배운 레시피가 곁들여졌다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다. 음식의 스토리가 얹어지니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
식민 통치자들은 늘 그렇듯 이역만리 다른 나라에 자신들의 문화와 색을 남겨놓았다. 시작은 리스본의 한 수도원이었지만, 이제 에그타르트는 해상무역의 역사와 함께 홍콩 마카오를 지나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까지 중국 문화권의 한 음식역사가 되었다.
리스본 시내 투어중 달콤한 휴식을 즐기는 관광객들 @김명주
동네 맛집에서 파스텔드나타(Pastel De Nata)를 맛 본 다음 날, 우리 가족은 반나절 리스본 시티 투어에 참여한다. 단 2박 3일 동안 도시 명소들을 알아가는데 안성맞춤이다. 투어 중간쯤 가이드는 잠깐 휴식시간을 제안한다. 유명한 에그타르트 집에 미리 주문해 둔 타르트와 커피 브레이크 타임이다. 주문 픽업을 도와줄 사람을 찾는데 울 딸이 자원하고 나선다.
가이드가 여행팀원들에게 에그타르트를 하나씩 전하면, 딸이 뒤따르며 원하는 사람에게 시나몬 파우더를 뿌려주는 식이었다. 오스트리아, 호주, 독일, 홍콩 등 각지에서 온 다른 참여자들과 우리 가족은 에그타르트 나눠 먹으며 금방 친해진다. 너무 맛있지 않느냐고 다들 한 마디씩 거든다.
리스본 광장에서 먹어보는 에그타르트 한 입에 여러 가지 옛 추억들이 소환되어 시나몬 가루와 함께 그 맛을 더해간다. 그렇게 또 다른 좋은 추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