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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주 Nov 01. 2024

리스본에서 만난 숯불 통닭구이

서민 식당에서 포르투갈 현지인들의 삶을 느껴보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수도는 다른 도시들이 따라갈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 국가의 기상을 보여주는 관공서나 유럽에는 왕궁들이 자리하고 있다. 나라의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있고, 세계각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있다. 포르투갈 리스본도 마찬가지다. 여름날 뜨거운 햇살과 함께 시대를 아우르는 여러 가지 색깔들과 에너지들이 엮이고 섞여 여름의 낭만으로 가득 차 있다.


하루 종일 그 중심을 헤매고 다니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 되어간다. 발로 걸으며 돌아다니는 여행을 선호하는 덕분에 이 즈음이면 배도 고프고, 무엇보다 다리가 아파 좀 앉아 쉬고 싶다. 


주위를 돌아보면 다들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들이다. 나도 여행객이면서 또 그런 음식점은 싫다. 지역 주민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퇴근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눈여겨본다. 리스본 중심가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다 쓰러져 가는 오래된 간판을 단 음식점으로 길에서 도로 보수 공사하던 인부들이 우르르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바깥에서 볼 수 있도록 통닭을 굽고 있는 모습이 흡사 서울에서 만나는 옛 통닭집을 연상케 한다.


리스본 통닭구이 음식점 @김명주 브런치 스토리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래된 연식이 눈에 띄는 음식점이다. 각자 개인 식탁이라기보다는 긴 식탁이 줄지어 있어 다른 사람들과 섞여 앉도록 되어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높은 천장에서 돌고 돌아 왕왕 울린다. 그 소리새를 비집고 내 이야기를 하려면 나도 목소리를 좀 높여야 할 참이다. 


누가 봐도 여행객인 우리는 우선 주문받는 아주머니와 눈을 맞추려 노력한다. 포르투갈 말을 할 줄 모르니 손짓 발짓으로 통닭구이와 시원한 맥주, 아이들을 위한 얼음 넣은 콜라를 주문한다. 먼저 서빙된 시원한 음료를 마시니 몸의 열기가 가라앉고 낯설던 공간이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기름기 쫙 빠진 통구이 닭 한 마리가 탁자에 놓인다. 포크 두 개씩 주어지는 것도 한국의 그곳과 비슷하다. 다들 배고팠는지 한 마리로 부족해 다른 한 마리도 얼른 더 주문한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속살, 닭껍질은 바삭하니 식감이 좋다. 배가 좀 부르고 나니 음식점 한편 바에 주르륵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높은 스툴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신발과 가방들이 눈에 띈다. 긴 하루 열심히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잠시 쉬어가는 직장인들의 모습이다. 도로공사하는 이의 흙이 잔뜩 뭍은 워커신발도 보이고 윤이 나게 닦았음에도 여기저기 주름이 잡힌 검은 신사화도 보인다.


아이들은 배가 좀 부르다 싶으니 바로 앞에 보이는 아이스크림 메뉴판에 빠진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곁들여야 한 끼 식사가 마무리된다는 듯이 말이다.  맛있게 먹고 있는데, 다 먹고 일어서던 옆자리 손님이 딸의 티셔츠를 보고는 아는 체를 한다. 딸아이가 마침 지역 축구팀 티셔츠를 사 입은 참이었다. 육십 대 정도로 보이는 흰머리가 희끗한 이 신사는 자신도 같은 축구팀 팬이라며 너랑 나랑은 한 팀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맞은편 친구로 보이는 다른 신사는 딸이 선택한 팀보다는 자기 팀이 더 훌륭하다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영어 짧은 포르투갈 신사와 현지어 못하는 십 대 소녀인 딸이 서로 눈짓 손짓 해가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나라의 수도가 보여주는 한 국가의 위용, 에너지, 분위기는 어찌 보면 보여주고 싶은 모습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모습들 뒤에는 많은 이들이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노고가 있고 또 그런 인생의 재미가 있음을 현지인들 가득한 음식점에서 느껴본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서 오늘의 경험을 적어 기록으로 남기고 내일의 모험을 계획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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