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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여기 내 집이거든요?

마당 고슴도치 이야기

by 세반하별

토요일 새벽,

게으름 피워도 되는 날에는 왜 이리 일찍 눈이 떠지는지 모르겠다.

조용히 부엌으로 내려가 커피 포트에 물을 올린다. 보글보글 끓기를 기다리며 물끄러미 밖을 바라보는데, 검은 털뭉치 같은 것이 마당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다.


'대체 뭐지?'

창문 모서리로 빼꼼 내다보니 고슴도치다.

우리 집에서 한 번도 맞아 본 적 없는 손님이라 무척 반갑다.

먹을 것을 찾는가 살펴보니 그저 마당을 크게 돌며 혼자 놀고 있다.


가까이에서 만나보고 싶다.

나는 문을 열고 조심히 마당에 한발 내딛는다.

외부 침입자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우리 집 강아지가 후다닥 뛰어오길래 혹시라도 고슴도치를 다치게 할까 싶어 얼른 뒤통수 문을 닫는다.


돌아보니 고슴도치가 얼어붙어 서 있다.

마치 사람 만나면 쥐 죽은 듯이 서 있어야 한다고 배운 듯 말이다.

만나기 쉽지 않은 손님이니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 놓고 싶다.

나는 한 발짝 더 가까이 고슴도치에 다가선다.


고슴도치가 바로 태세 전환한다.

갑자기 잔뜩 몸을 웅크리더니 온몸의 뾰족한 가시를 세운다.

뱀에게서나 들어 봄 직한 이상한 소리도 낸다. “hiss~”.


내가 많이 무섭나 보다 싶어 한 발짝 뒤로 물러서니 의가양양 해진 이 녀석이 더 가까이 내 앞으로 다가온다. 그새 가시는 더 날카롭고 뾰족하게 세웠고, '쉬익 ~' 소리도 더 커졌다.

나는 슬쩍 무서운 마음이 들어 얼른 부엌 안으로 들어선다.


고슴도치와 나 사이에 안전한 경계를 확보하고 나니 은근 부아가 차오른다.

내 집 마당에 불쑥 찾아온 주제에, 강아지가 상처라도 줄까 봐 도와준 마음도 몰라주고 나를 위협하다니. 무엇보다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라고 해봤자 내 주먹보다도 작은데 피해 들어오다니 자존심이 상한다.


문 안쪽을 서성이던 나는 고슴도치 가시 대신 오븐 장갑을 끼고 마당으로 조심스레 나선다.

그 새 고슴도치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없다.

흐릿하게 찍힌 사진 한 장이 없었다면 새벽녘 꿈이었나 싶게 말이다.


며칠 후 마당 쓰레기를 모아둔 봉투 안에서 태평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 고슴도치를 발견한다.

어느새부턴가 방문객이 아니라 마당에서 살고 있었나 보다.

고슴도치가 이상한 소리 내는 이유를 구글에 물어보니 고슴도치가 “(상대가) 아주 귀찮을 때” 내는 소리라고 한다.


모르는 사이 나는 고슴도치 동거인이자, 귀찮은 집주인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고슴도치는 야행성 동물이라던데,

며칠째 밝은 낮 시간 우리 집 마당을 뱅뱅 도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옆집 이웃에게 물어보니 고슴도치가 아무래도 우리 집 마당에 갇힌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한다.


뾰족한 가시가 무섭기도 하지만, 귀한 생명이 잘 살 수 있도록 보내줘야 할 것 같다.


집 근처 큰 공원이 있다.

빈 박스 안에 고슴도치 두 마리를 넣어 데려간다.

잔뜩 웅크린 모습이 겁을 먹은 것 같기도, '이제 해방이다' 안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공원 큰 나무 밑 그늘에 조심히 내려준다.

뒤도 안 보고 사라지는 고슴도치를 보며,

그 짧은 인연 아쉬워하는 마음은 나 뿐이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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