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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주 Feb 01. 2024

영국에서 끓인 부대찌개

이제는 세계가 K푸드를 모방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이모, 저 인천공항에 도착했어요”


영국에 사는 큰 조카가 놀러 왔다고 이모는 사시는 집으로 얼른 오라 하신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나에게는 친정이나 다름없는 이모집이다. 미군에서 근무하시는 이모부는 매번 근무지가 바뀌는데 2년 전 이모집은 의정부였고 이번에는 송탄이라고 한다. 난생처음 송탄 가는 길, 공항버스를 타고 이모집으로 향한다.


"Hi MJ, How are you?"

KFC 할아버지 모델 같은 이미지에 사람 좋은 인상의 이모부는 여전한 모습으로 두 팔 벌려 나를 맞아주신다. 이모와 나는  “잘 다녀왔냐. 어디 얼굴 좀 보자” 한참 안부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보니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다. 시차로 낮인지 밤인지 신체리듬을 잃어버린 나는 나이 드신 이모가 밥 챙기시는 것도 불편하고 해서 외식하자고 조른다. 송탄 하면 부대찌개 아니겠는가. 오늘은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다.


이모부는 냅킨을 깔고 수저 한 세트를 내 앞에 놓아주신다. 분명 미국분이신데 다년간의 한국생활 덕분에 정작 나는 방문객, 이모부가 한국 현지인이다.


부대찌개 3인분을 시켰건만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큰 냄비에 햄이며 소시지, 베이크빈스, 두부, 야채 그리고 잘 익은 김치에 다진 양념 장까지 육수가 찰랑찰랑 담겨 나온다. 탁자 위에 버너 가스불을 켜고는 이제나 저제나 보글보글 끓는 순간을 기다린다. 소주도 한 잔 곁들이는데, 오래간만에 마시니 그리 달다. 장시간 비행 피곤함이 싹 풀리는 것이 그제야 고향땅이구나 싶다.


한국 전쟁 한창이던 1950년대 군용 음식만으로 배를 채울 수 없던 군인들이 미군 군수물자를 빼내거나 그들이 먹고 남은 잔반들을 모아 김치 넣고 푹푹 끓여 먹기 시작한 것이 부대찌개의 원조라고 한다. 햄섞어찌개라고도 하고 해외에서는 Korean Army Stew라고 불리기도 한다. 통조림 소시지나 햄에서 나오는 짜고 기름진 맛에 발효된 맵고 짠 김치를 넣고 푹푹 끓이자면 사실 엄청나게 짜게 마련이다. 물을 넣고 쌀이나 다른 음식을 넣어 끓이면 음식이 귀하고 배고프던 시절 양껏 배불리 먹을 수 있었으리라.


그렇게 군인들이 만들기 시작했다는 부대찌개가 이제는 메뉴로 프랜차이즈 사업이 될 만큼 사랑받는 음식이 되었다. 요즘 부대찌개에는 고급화된 햄, 소시지 그리고 김치뿐만 아니라  채소, 두부, 떡 같이 간이 되지 않은 생 음식들을 곁들이고 라면사리도 추가한다. 국물이 졸면 졸아드는 대로 육수를 첨 한다면 소주 몇 병 곁들이기에 이만큼 훌륭한 음식도 없다.


누군가는 부대찌개를 대한민국 최초의 퓨전 요리라고 부르기도 하고, 한국 현대사의 상징적인 음식이라 칭하기도 한다. 한국 전쟁 이후 70여 년이 지난 대한민국은 1950년대 우간다 보다도 가난했던 나라에서 이제는 세계 13위 경제대국(2023년 기준), 부자나라로 발전했다.


사람들이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맛있게 먹고 싶으면 골라 먹는 요리가 바로 현재의 부대찌개다. 반면에 아직 북한과 정전 중이 아니라면 미군이 대한민국 땅에 주둔할 이유가 없고 그랬다면 아마  나는 지금 밥상 맞은편 미국 군인인 이모부와 송탄에서 부대찌개를 나눠 먹는 이런 순간은 주어지지 않았겠지. 세상이 변했지만 큰 줄기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중국집 짜장면, 한국식 후라이드 치킨 그리고 부대찌개.

이 음식들의 공통점은 모두 외래 음식을 현지화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라는 점이다. 지금은 K푸드로 사랑받는 음식들이다. 대한민국은 해외문물을 받아들이고 현지화해서 발전시키는 능력이 있는 나라다. 이런 능력은  음식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문화 예술로도 발전을 거듭하여 지금의 번영을 이뤄낸 원동력일 테다.


내가 사는 영국 Tesco 슈퍼마켓에 샌드위치와 랩 일색이던 점심 세트 메뉴에 한국 덮밥 스타일이 프리미엄 버전으로 새로 출시되어 판매되고 있다. 한 지역 닭요리 전문점에는 한국식 치킨으로 작년 닭요리 경연대회 1등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메뉴에 올려놨다. 이제는 해외에서 한국요리를 접하고 따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내가 집안 대소사로 시댁에 방문했던 어느 날, 며칠 얻어먹기만 해서 미안한 마음에 오늘 저녁식사는 내가 준비하겠다 호언장담한 날이었다, 식사 한 시간 전 갑자기 아버님 친구분 내외가 방문하시겠다 연락이 왔다. 남편에게 얼른 가서 스팸 한 통 사 오라 하고는 집에 있던 채소들을 모아다가 손질했다.


영국 가정집답게 갈아놓은 쇠고기, 베이크빈스, 치즈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맛 보이려고 좀 챙겨간 홈메이드 김치를 썰고는 급하게 한대 모아 부대찌개를 끓였다. 무슨 냄새가 이리 매콤하냐 하시며 매워서 못 먹는 거 아닌가 부모님은 걱정하신다.


아버님 친구분이 오시고 나는 한국에서 온 며느리, 그 나라 음식을 만들었다며 소개한다. 매워 못 먹을까 반신반의하시던 두 노신사분들은 한 입 국물을 떠드시더니만, “그 소시지도 좀 맛볼까’ 하신다.


걱정은 기우였고, 내가 만든 부대찌개는 그날의 히트 음식이 되었다. 음식의 유래를 설명드리니 2차 대전 때 영국 음식들로 이야기가 이어지며 즐거운 저녁을 보낸 기억이 있다. 나에게 그날의 부대찌개는 자랑스러운 한국 문화의 종합세트였다.


영국사람들은 통조림 고기들을 예전 전시에 먹던 음식이라 부르며 저질로 취급한다. 사실 시장에 가보면 생고기 100g 값이나 스팸 30g 가격이 비슷해서 굳이 스팸을 사야 할 이유가 없다. 영국에서 부대찌개를 만들 때는 저렴한 생고기나 햄들을 넣어 만들고는 쇠고기 다시다 같은 그래뉼스(Granules)를 넣는다. 사실 MSG 첨가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염분이 좀 줄기는 한다. 어쨌거나 내가 찾은 이곳에서 한국음식을 현지화한 방식이다. 육류를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껏 부대찌개 대접했을 때 싫어하는 지인은 만나보지 못했다. K푸드의 확장성은 무궁무진하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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