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일기를 써 왔습니다. 그저 생각나는 것이 있거나 뭔가 속이 답답할 때면 펜 하나에 하얀 공책 들고는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곤 했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면 남들과 얘기 나누면서 마음을 푸는 것과는 또 다른 카타르시스가 있습니다. 더불어 흥분하거나 들떴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바른 상황을 판단하기 좋은 내 이성적 자아가 곧 나타나고는 합니다.
40대가 되고 지금까지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 내가 기준으로 삼아왔던 가치관에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산다는 게 뭘까”, “하루종일 바쁘게 움직이면 그럼 인생을 충실히 사는 걸까”,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다시 사춘기 소녀와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갑자기 당황스러워졌습니다. 그 질문들의 답을 찾으며 속앓이를 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다시 펜을 잡았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얘기해 봐.’, ‘아무도 안 봐. 아무도 관심 없어. 그냥 너랑 하얀 종이뿐이야.’ 꼭 깜깜한 무대에 핀 포인트 조명 하나 켜놓고 나 자신과 마주 서 있는 또 다른 나의 마음이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같은 고민을 가진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모임이라고 해서 각자의 생각을 나누거나 위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꾸준히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는지 서로 옆에서 지켜봐 주고 격려하는 정도였습니다.
온 가족이 하루 일상을 시작하기 전,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나와의 대화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보고서를 쓰는 것처럼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누구에게 보일 목적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모임 리더분께서 ‘나중에 죽을 때 아무도 모르게 불사르고 싶을 만큼’ 내 안의 나와 솔직하게 얘기를 해보라고 합니다. ‘사회 생활하듯이 꼭 글의 끝은 긍정적인 해피앤딩일 필요 없다.’, ‘욕을 하고 싶으면 대차게 욕을 써라.’
쓰다 보니 일주일이면 검정 볼펜 하나를 다 써버릴만큼 쓰고 싶은 얘기가 많아 놀랍습니다.
글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요.
제 마음과 생각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데 글쓰기 만한 것이 없음을 바로 체험하게 됩니다.
글을 쓰다 보니 그동안 알지 못했던 습관이 보입니다. 내 얘기에 혼자 취해 주제와 상관없는 얘기로 빠지고는 합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가 잠깐 글쓰기를 멈춰야 할 때가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다 보면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그 이유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스스로 미처 깨닫지 못한 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와 마주하는 글을 자꾸 쓰다 보니 남에게 보이는 글도 써보고 싶어 졌습니다.
처음 블로그에 글을 올리던 날을 기억합니다. 누가 옆에서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글 쓰다가 얼굴이 화끈해지기도 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픈 사회적 가면을 나도 모르게 쓰고는 누구나 공감하고 동의할 수밖에 없는 희망적이고 예쁜 글을 써 보았습니다. 지금 읽어보면 별 내용도 아닌데, 쓰고 지우 고를 몇 번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전체 공개로 클릭, 블로그 글을 올렸습니다.
두근두근했던 내 마음과는 달리 첫 포스팅 글에 좋아요가 3명이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오히려 좀 더 편안하게 글로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예쁘게 보이고픈 글은 독자들이 대번에 알아차립니다. 그런 글은 쓰는 사람도 얼마 안 가서 재미가 없고 지루해집니다. 글은 솔직하게 쓸 때 힘이 있구나 배워갑니다.
꾸준하기 위한 방법으로 블로그에 책을 읽고 감상문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100일 챌린지 같은 것을 걸어서 게으르지만 약속은 지키는 나의 습관을 적극 이용해보기도 합니다. 더불어 다른 사람들의 포스팅 글도 읽어봅니다. 혼자만의 독백이 아닌 독자와 함께 생각해 볼 만한 주제가 담긴 글은 무엇일까 고민과 노력을 거듭하게 됩니다.
글 쓰는데 관심 있는 분들의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합평을 통해 다른 사람의 글소감을 듣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 시각의 편협함을 깨어나갑니다. 글동무들에게서 지적되거나 의문이 든 부분들을 고치고, 글 구성을 바꿔가며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가장 잘 녹여 설득력 있게 글을 완성할 수 있을지 무수히 연습합니다.
글을 쓸 때 나 스스로 그리고 독자에게 더 친절해지는 연습을 합니다. 성급히 일반화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내 말이 상대방에게 잘 전달되려면 적절한 소재를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잘 활용해야 합니다.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독자가 헷갈리거나 답답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 내가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 자꾸 서 보게 됩니다.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은 직접 쓰다 보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됩니다. 하루종일 앉아 A4 한 장도 제대로 못 채우는 날도 많습니다. 쓰고 지우고를 무수히 반복합니다.
마지막 퇴고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한글 맞춤법 검사도 꼭 해봅니다. 예상보다 띄어쓰기가 잘 못 되거나 받침이 잘 못 된 경우가 제법 많습니다. 내가 이리 외래어를 자주 쓰고 있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한글만큼 다양한 묘사가 가능한 언어도 없는데, 최대한 한글단어로 수정하고 표현합니다.
‘힘들 때면 외국어를 배웠어요’ 연재를 마치면서 외국어 배움의 시작점을 다시 돌아봅니다.
언어의 생명은 소통입니다. 나와의 소통, 남과의 소통, 세상과의 소통이지요.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던 이유도 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영감을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현재 영국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속한 세상의 언어, 영어로도 종종 글을 써봅니다. 그 글을 읽어 보면 뜻은 통합니다. 하지만 진정 내가 말하고 싶은 진심과 감동은 세상에 태어나 내 어머니에게서 처음 배웠던 그 언어, 모국어로 표현만 못합니다. 단순히 정보를 나누는 기호학적인 의미를 넘어 문학적인 공감과 소통을 하려면 결국 모국어임을 요즘처럼 실감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모국어를 더 귀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