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떠나는 과학 여행 : 03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
요즘 학교에서는 전교생 또는 한 학년이 단체로 떠나는 수학여행이 대부분 사라졌다. 그 때문이지 고속도로에서도 관광버스 10여 대가 줄지어 달리는 풍경은 보기 힘들어졌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기 때문임을 알고 있지만 아이들이 단체 수학여행의 묘미를 경험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거에는 수학여행 하면 무조건 '경주'였다. 나 역시 줄지어 달리는 10여 대의 버스 중 한대에 몸을 싣고 경주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
경주 수학여행은 신라의 수도이며 큰 도시였던 경주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이 주된 프로그램이었다.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대표되는 불교 유적과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으로 대표되는 고분이 학생들이 주로 찾는 코스였다. 대부분 역사와 관련 있는 장소다. 학생이던 시절에는 사실 어떤 장소를 방문하는지는 큰 관심이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한다는 것이 훨씬 큰 재미 요소였다. 그래서일까? 분명 경주를 다녀온 기억이 있지만, 어떤 장소를 방문했는지보다는 그때 친구들과 함께 자던 숙소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실 경주에서도 과학을 주제로 이야기를 할만한 장소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이다. 양남 주상절리군은 경주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문무대왕릉(대왕암)에서 남쪽으로 6km 정도 떨어진 지역에 있다. (문무대왕릉과 주상절리군 사이에는 월성원자력발전소도 있다.)
양남 주상절리군은 읍천항과 하서항 사이 해안을 따라 존재하는데 이곳에는 '파도소리길'이라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읍천항이나 하서항에 주차해 두고 천천히 걸으면 대표적인 주상절리와 전망대까지 1~2시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이곳 양남 주상절리군의 가장 큰 특징은 여러 가지 모양의 주상절리를 한 장소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직으로 서 있는 주상절리, 수평으로 누워있는 주상절리, 기울어진 주상절리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희귀성을 인정받는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다.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는 주상절리 기둥들이 활짝 핀 꽃처럼 원형으로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는 전망대 바로 앞쪽에 있는데, 사실 전망대는 이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를 잘 내려다보기 위한 전망대라고 보는 것이 맞다.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는 이곳 주상절리군을 넘어 우리나라 지질 명소를 대표하는 이미지라 할만하다. 국가지질공원 BI를 자세히 살펴보면 바로 이 부채꼴 모양 주상절리와 한반도를 적절히 융합하여 형성화 한 이미지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만 보아도 이 주상절리의 지질학적 가치나 희귀성을 짐작할 수 있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흐르다 굳을 때 만들어진다. 액체 상태라 할 수 있는 용암이 고체인 암석으로 굳을 때 부피가 줄어드는데 이때 육각형 또는 오각형 모양으로 갈라지게 된다. 비유하자면 가뭄 때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 갈라짐이 용암 내부로 점점 전파되어 거대한 기둥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전망대 1층에는 다양한 모양의 주상절리들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전시물이 있다. 부채꼴 주상절리는 용암이 물길을 따라 흐르다 둥근 구덩이를 만나 용암이 원형으로 돌아 고였다가 굳은 경우나 둥근 통로를 따라 솟아 나오다가 굳은 경우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한다. 기존 암석과 닿아있는 쪽의 용암이 먼저 굳고 안쪽으로 서서히 굳어가며 기둥을 형성했다고 하면 사진으로 보는 부채꼴 주상절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상절리의 모양을 가지고 용암이 흐른 방향이나 형태 등을 유추하는 것이 가능하다. 기둥의 위쪽과 아래쪽이 가장 먼저 식었고 기둥 중심부까지 순차적으로 식었다고 생각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어떤 조건이었을지 생각해 보면 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못할 것도 없다. 아이들과 함께 주상절리를 보고 아주 오래전에 용암이 어떻게 흐르고 있었을지 상상해 보자.
읍천항이나 하서항에서 출발해 파도소리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모양의 주상절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하서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는 누워있는 주상절리 위를 직접 걸어볼 수 있는 장소도 있다. 주상절리를 구성하는 암석(주상절리를 구성하는 암석은 화산암인데, 이곳도 제주와 마찬가지로 현무암이다.)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도 있다.
과거의 경주가 수학여행의 성지였다면 요즘 경주는 젊은이들이 찾는 핫 플레이스다. 황리단길, 동궁과 월지와 같은 장소는 MZ세대에게 점령이라도 당한 듯하다. 가족 단위 여행객도 많이 볼 수 있다. 학생들의 단체 여행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는 장소가 바로 경주다. 여러분도 언젠가는 분명 경주에 갈 일이 있을 것이다. 여전히 경주는 천년의 고도이며 역사의 도시다. 하지만 과학 이야기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장소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불국사나 석굴암, 첨성대와 같은 장소에서도 얼마든지 과학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너무 뜬금없을까? 물론 그렇지만 뭐 어떤가? 다양한 측면에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은 절대 해가 되지는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과학 이야기를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라도 할 수는 있다. 그건 이곳 경주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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