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떠나는 과학 여행 : 04 불국사화강암과 세계 최고(古)의 천문대
여행을 위해 경주를 찾는다면 빼놓지 않고 꼭 들르는 장소가 몇 곳 있다. '신라'라고 하는 고대 왕국의 수도였던 경주. 그래서 경주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다양한 문화유산이 가득하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불국사와 석굴암 그리고 첨성대일 것이다. 첨성대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니 과학과 접점이 분명히 있어 보인다. 하지만 불국사와 석굴암에서 과학이라니? 라며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글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그곳에도 살펴볼 만한 것이 있다.
살펴볼 것은 바로 '돌'이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옛 건축물 대부분은 목조 건축물이지만, 건물의 주춧돌이나 불교 조각, 석탑 등에서는 쉽게 화강암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불국사와 석굴암은 화강암 석재가 상당히 많이 쓰인 건축물이다. 지구과학 교과서를 살펴보면 '불국사 화강암'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불국사'라는 구체적인 절의 이름이 화강암이라는 암석 이름으로 붙어있다. 어떤 사정이 있었기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일까?
화강암은 마그마가 지하 깊은 곳에서 서서히 굳어 만들어진 심성암으로 전체적으로 흰색을 띠며 중간중간 검은색 점들이 박혀있다. 그리고 표면이 상당히 거칠며 굉장히 단단한 특성을 가진 암석이다. 우리나라에 산재한 화강암은 크게 세 종류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대보 화강암'과 '불국사 화강암'이다. 경주 지역에서 발견되는 화강암이 바로 '불국사 화강암'이다.
'불국사 화강암'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간단하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위치한 토함산의 화강암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의 화강암이 우리나라에서 기존에 확인된 다른 화강암에 비해 생성 연대가 비교적 젊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래서 이 화강암에 '불국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불국사 화강암은 대략 중생대 백악기 정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국사 화강암은 경주 인근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설악산에도 불국사 화강암이 분포한다. (울산바위로 알려진 거대한 암석 능선이 바로 불국사 화강암이다.)
반면 '대보 화강암'은 불국사 화강암보다 이른 중생대 쥐라기에 생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주변에 관악산, 북한산, 인왕산 등의 산도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북한산의 거대한 암벽은 유명하다. 이 화강암들이 바로 대보 화강암이다.
석굴암에서는 조금 다른 주제의 이야기도 할 수 있다. 바로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기술에 대한 이야기다. 석굴암은 기록에 따르면 8세기에 만들어졌다. 지금부터 1,200년 전에 만들어진, 오래된 건축물이다. 오래된 시간이 지나다 보니 한동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에 복원 공사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복원 공사가 옛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석굴암은 유리로 완전히 밀폐되어 있다. 관광객에게도 개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습기 때문이다. 원래 석굴암은 아래쪽에 물이 흘렀다고 한다. 이를 통해 습도를 자연적으로 조절했다고 하는데, 복원 과정에서 물길을 모두 막아버렸다. 이 때문에 습도 조절에 문제가 생겼고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되고 만 것이다. 1,200년 전의 선조들의 기술과 지혜가 복원 과정에서 무시된 안타까운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석굴암으로 올라가는 계단 양쪽에서는 석굴암을 복원하고 남은 석물들을 볼 수 있다. 복원 과정에서 일부 부서진 석재를 새로운 것으로 교체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라 하겠다.
석굴암 본존불과 석굴암 본존불을 둘러싸고 있는 부조상들은 조형적인 완성도가 아주 높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조각상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단아하게 조각된 모습이 다소 투박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선조들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
가끔 그리스나 로마의 조각상과 우리 조각상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다. 훨씬 더 사실적이고 부드러운 곡선을 지닌 서양의 조각상들과 우리의 조각상과 다른 우리 조각상의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각을 어떤 암석에 했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대리암(석)은 무른 암석(모스 경도 3~4)이며 암석 자체가 광이 나는 특성이 있다. 반면 화강암은 모스 경도가 6~7 정도로 매우 단단한 암석이며 표면이 거친 특성이 있다. 우리 석상의 투박함은 장인들의 솜씨보다는 암석의 특징 때문이다. 훨씬 더 단단하고 거친 암석에 석굴암 부조상과 같은 정교한 조각을 한 우리 선조들의 능력은 인정해야 한다.
경주와 과학을 함께 놓고 생각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첨성대이다. 첨성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7세기)로 알려져 있다. 화강암 벽돌 364개를 쌓아서 만들어졌다. 또 서 있는 방향이나 위쪽은 네모지고 아래쪽은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1년과 28수 별자리와 같은 것과 연관이 있다고 전해진다.
간혹 첨성대가 천문대가 아니라 종교적인 목적의 건축물이라든가 아니면 국가 행사용 건물로 쓰였을 거라 주장하는 분들을 만나기도 한다. 물론 그럴 용도로 쓰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첨성대가 천문대의 기능을 했다는 것, 다시말해 천문대였다는 것이 정론이다.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까지 천체 관측은 맨눈으로 해야 했고, 사방이 평지인 현재 첨성대의 위치에서도 천문대의 역할은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첨성대 건립 이후 천문 관측 기록의 양이 대폭 증가했고, 관측 기록을 토대로 추정한 관측지의 위치도 현재 첨성대의 위치와 일치한다고 하니 첨성대가 천문대의 역할을 했다고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첨성대는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경주의 새로운 핫플레이스인 황리단길과 인접해 있다. 황남 쫀드기와 십원빵을 먹으며 황리단길을 즐겼다면, 첨성대는 잠깐 둘러보자. 옛것과 새로운 것이 어울어진 경주라는 도시의 참모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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