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별 Dec 18. 2020

쉼 없이 이어간 행사

영화 상영 한 번 하기 힘들다, 정말..


이번에는 행사 관련 썰을 풀어보려고 한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는 도서관이 구석진 곳에 있어서 학생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었다. 만약 편안함을 추구했다면 더할 나위 없을 정도의 환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고, 행사로 도서관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이번 이야기는 그중 영화 상영 행사를 진행했던 경험에 관한 것이다.




4월에 세계 책의 날 관련 행사를 끝내고 많은 고민을 했다. 초반이라 과연 어떤 행사를 하는 게 좋을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던 때였다. 그래서 일단 서랍장에 보관되어 있는 DVD를 써먹기로 했다. 마침 5월이 가정의 달이니 관련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면 좋겠다 싶어 '겨울왕국'과 '코코'를 도서관에서 상영하기로 했다.


원래 기계를 좀 다루는 편이라 영화 상영 정도는 솔직히 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일단 영화를 상영할 프로젝터가 연결된 컴퓨터는 내 업무용 컴퓨터였고, 그 말은 즉 영화를 상영하는 동안 업무를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도 뭐, 그냥 그 시간 동안 책을 꽂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었다. 컴퓨터로 DVD를 재생하려면 전용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학교에 그런 게 깔려있을 리가 없었다. 급한 대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걸 깔아서 사용했지만 기능이 조금 아쉬웠다. 그렇다고 학교인데 체험판을 깔아서 할 순 없으니 일단 첫 영화는 어떻게든 그걸로 해결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도서관 구석에 있던 오래된 DVD 플레이어에 자꾸만 눈이 갔다. 처음에는 사실 그걸 연결해서 사용하려 했었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안된다는 걸 확인받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영화 상영 행사는 5월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도서관에 대형 TV를 달아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갑자기 TV를요?"

"응. 65인치 엄청 큰 거 달아준대. 금방 해줄 것 같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봐."


학교 전체적으로 낡은 TV를 바꾸면서 담당 선생님께서 도서관 프로젝터 얘기도 하신 모양이었다. 얼떨떨했지만 기쁘기도 했다. TV라면 DVD 플레이어를 연결하기도 훨씬 쉬우니 말이다. 담당 선생님 말씀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TV가 도서관에 설치되었다. 물론 역시나 순탄하게는 아니었다.




내가 직접 설치하는 것도 아니고, 험난할 게 뭐가 있을까 싶겠지만 언제나처럼 예의의 문제였다. 분명 오후 2시에 오겠다던 설치 업체 사람들은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오질 않았다. 그 시간에 맞춰 컴퓨터 업무를 마무리했던 나는 남은 시간 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가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도서관에 도착한 건 내 퇴근 시간이 5분 지나고 나서였다. 그제야 공사를 시작하면 대체 언제 끝난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도서관 문은 열쇠로만 잠글 수 있었기 때문에 더 화가 났다. 결국 숙직 선생님께 부탁을 하고 나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아, 혹시 TV에 이거 연결할 수 있을까요?"


그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까먹지 않고 DVD 플레이어를 가리키며 물었다. TV 설치 기사가 내 말에 잠시 살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너무 오래된 거라 연결 잭이 따로 필요해요."

"네?"

"학교에는 없을 거고, 필요하시면 그 정보 선생님한테 사달라고 하세요. 되게 쿨하시던데."


어째 잘 풀린다 싶더니.. 한숨이 나왔다. 그 '쿨'하시다는 정보 부장 교사와는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학기 초부터 서로 업무 때문에 얽힐 일이 많았어서 개인적으로 좀 불편한 상대였다. 어지간하면 마주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그런 상대.


플레이어는 포기해야겠다, 싶었는데 문득 우리 집에 있는 것이 생각났다. 얼른 집에 와서 살펴보니 만만치 않게 오래된 우리 것도 옛날 연결 잭을 사용하고 있었다. 얼른 챙겨 다음날 출근해서 연결해봤는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때의 희열은 정말 잊을 수 없다. 사실 별 것도 아닌데 뭔가를 해낸 것 같아 뿌듯했다.


덕분에 나는 그 이후로도 영화 상영 행사를 할 수 있었다. TV로 상영을 하고, 학생들을 간간히 지켜보며 업무용 컴퓨터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정확히 내가 상상한 그대로의 행사 진행이었다.




이렇듯 학교에서 뭔가를 하고 싶으면 무조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면 스스로라도 해야 한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학교도서관은 정말 사서의 욕심과 역량에 따라 달라지는 곳임을 또 한 번 느낀다.




이전 13화 바닥났던 인류애 충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