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별 Dec 27. 2020

쉽게 오지 않는 방학1

안 그래도 힘든 장서점검인데 근로까지 말썽이네.


학교에서 근무하는 내내 방학만을 기다렸다. 학생들이 많지 않고, 학생들이 많지 않으며, 학생들이 많지 않은 것만으로도 방학이 기다려지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게다가 같은 이유로 쌓인 연차를 쓸 수 있으니 더 기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방학은 결코 쉽게 오지 않았다.




첫 번째 고비는 장서점검이었다. 장서점검이란 도서관 시스템에 등록되어있는 책이 잘 있는지, 실물 책을 전부 스캔하여 확인하는 과정이다. 내가 있던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2만 권이 넘는 책의 바코드를 스캔해야 했다. 게다가 4화에서 언급한 마법의 공간 책까지.. 폐기 도서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는 다 스캔해야 했다.


그래서 근로를 신청한 것이지만 도서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장서점검기는 1대뿐이었다. 사실 이마저도 감지덕지이긴 한데(없는 곳이 훠어얼씬 많다) 그래도 더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주변 공공도서관에 문의했으나 다 대여가 끝난 상태였다.


그래서 가장 못 미더운 근로 A에게 장서점검기를 주고, 근로 B는 유선 바코드 리더기를 노트북에 연결해서 사용하도록 했다. (노트북은 정보 부장 교사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나는 전에 발굴해둔 무선 바코드 리더기를 활용해서 최대한 가능한 범위까지 찍기로 결정했다.


장서점검기는 작은 리모컨 모양이었는데, 사용하기가 정말 편했다.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갖다 대기만 하면 자동으로 바코드가 스캔되어 내장 메모리에 저장되었다. 나중에 USB로 컴퓨터에 연결하여 한 번에 데이터를 옮길 수 있었다. (만약 이걸 보고 있는 당신이 1인 사서라면 꼭 구매하시길..)


용량이 꽤 넉넉하긴 했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1,000권마다 데이터를 옮기라고 근로 A에게 미리 말해뒀다. 그 말을 잘 들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던 거지. 그 좋은 장비를 가지고도 그 친구는 사고를 쳤다.




오늘까지만 하면 끝나겠다고 생각한 날이었다. 예정보다는 일렀지만 최대한 빨리 끝낸 후 서류를 올리고 폐기를 진행하는 게 좋은 상황이었다. 고본 처리용 폐휴지 차에 폐기 도서를 함께 버릴 예정이라 그전에 폐기를 끝내야 했으니까. 미리 점찍어둔 폐기 도서 바코드는 구분해서 찍으며 일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었지만, 장서점검을 하면서 발견한 오래된 책도 폐기해야 하기 때문에 장서점검이 끝나야 폐기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예정보다 빠르게 끝내고 여유 있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그때였다. 갑자기 근로 A가 분주해졌다. 느낌이 쎄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은 알 것 같았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A씨 무슨 일이에요?"

"아, 잠시만요."


대답을 회피하더니 몇 번을 더 왔다 갔다 했다.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어차피 실수한 게 뻔한데, 숨겨서 어쩌려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그게 내가 예상한 종류의 실수라면 스스로 처리할 수도 없을 것이었다.


"A씨, 왜 그래요? 문제 생겼으면 그냥 얘기하세요."

"아, 그게.. 일부가 날아간 것 같아요. 근데 어딘지 찾아서 그 부분만 찍으면 될 것 같아요!"


데이터가 날아갔을 거라고는 예상했다. 그런데 찾았다고? 미심쩍었지만 일단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1시간쯤 후에, 그러니까 퇴근 시간이 30분 정도 남은 때에 마무리했다는 파일을 넘겨받았다. 시스템에 돌린 결과 역시나 몇 백 권의 누락 도서 리스트가 떴다. 실제 분실된 경우도 있었지만, 유독 특정 번호대의 도서가 없는 걸로 보아 누락된 부분을 제대로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까 날아갔다는 구간이 400번대예요?"

"네? 네.."

"제가 청구기호 적어줄 테니까 그 부분 내일 와서 다시 해주세요."

"아 네.."


누락이 되지 않았다면 오늘 담당 선생님께 넘겨서 서류 처리를 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일 중에 결재가 끝났을 것이고, 빠르게 진행했다면 폐기도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니 더 화가 치밀어올랐다. 덕분에 1시간을 더 낭비했고, 결국 서류 처리는 커녕 장서점검조차 제대로 끝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A씨, 그러게 제가 아까 파일 달라고 했잖아요."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마디를 했다. 아니 사실 나름 많이 참고 한 말이 그거였다. 하지만 그 말에 당황한 근로 A의 표정을 보며, 혹시나 그만둔다고 할까 봐 애써 한 마디 덧붙였다.


"다음부터는 그냥 얘기하고 같이 해결해요."

"네.."


그렇게 일단은 장서점검은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더 큰 난관인 폐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전 15화 드디어 찾아온 인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