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별 Nov 30. 2021

행운의 반지

반지가 잘 어울리지 않는 손을 가진 내가 꽤 오래 끼고 다닌 반지가 하나 있다. 특별히 보석이 박힌 것은 아니고, 특징을 꼽자면 각인 정도? 전면에는 내 필명을 이모티콘으로 표현해서 넣었는데 사실 그보단 보이지 않는 안 쪽에 새긴 문구가 내겐 더 의미가 있었다. "행운을 빌어"


사실 나는 이 반지를 행운을 오길 바라는 마음보단 불행을 물리치기 바라는 마음으로 꼈다. 몇 년 전부터 힘든 일이 겹치면서, 이런 미신 같은 행운의 상징이 별 의미가 없단 걸 알면서도 괜히 바라며 반지를 주문했고, 습관적으로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직장에 출근할 땐 매번 반지를 꼈다. 어쩌다 깜빡한 날엔 은근히 신경 쓰였다. 물론 별 일이 없을 때가 더 많았다. 있을 때도 있었지만. 이 반지의 의미를 정확히 깨달은 건 오히려 다른 날이었다.


행운의 반지가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있다.

위로가 되는 사람과 만날 때 반지를 깜빡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반지의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책상 위에서 발견하고 나서야, 오늘 반지를 끼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럴 만했다. 좋은 사람과 함께한다면, 불행도 즐거움이 될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잘 견딜 수 있다. 그런 사람 자체가 행운이니까. 그 생각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행운의 반지가 의미 없는 순간 역시 존재한다.

올해, 직장을 새로 들어갔는데 그곳도 역시 쉽지 않은 곳이었고, 예상했지만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잘하면 되겠지. 잘하면 인정하겠지. 이 악물고 버틴 6개월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12월부로 계약이 종료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내 경력은 7개월로 끊길 예정이다.


재계약이 꽤 자연스러운 곳이라고 했다. 내가 아니어도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한들, 공백이 생기는 건 막을 수 없는 상황인데 계약 종료라니. 솔직히 좀 충격이었다. 종료를 해도 내가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허무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통보를 받을 때도 난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 결과의 부당함은 회사 내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화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어쩌겠는가. 더 노력해서 좋은 곳에 가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 후로도 난 여전히 반지를 끼고 다닌다. 물론 이전처럼 불행을 물리쳐달란 기대는 가지지 않는다. 어차피 올 불행은 오고, 올 행운도 올 테니까. 습관처럼 지니고 있다 보면, 언젠가 또 행운이 생겨 반지 덕이라고 할 날도 오겠지.



작가의 이전글 마지막을 잊고 싶지 않아 남기는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