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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Nov 21. 2020

충격적인 근무 환경


선생님.. 도서관에 북트럭이 없어요...


학교도서관에 대한 기억은 사람마다 다를 거라 생각한다. 지금은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오직 내가 다녔던 학교의 도서관을 기준으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근무지를 배정받아 방문했을 때, 내 기억 속의 도서관이 평균 이상이었다는 걸 첫눈에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근무 환경과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그 도서관을 묘사해보자면, 별관 구석이라는 접근성 낮은 위치, 삐걱거리는 마루 바닥과 교실 2~3개를 합친듯한 어마어마한 크기, 나조차 파악하기 힘든 복잡한 서가 순서,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에나 적용될 법한 내용의 오래된 책으로 이루어진 서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복본(=동일한 책)의 연속, 순서가 엉망인 건 기본이며 테트리스를 떠올리는 도서 비치 상태까지... 그냥 말 그대로 낡은, 방치된 도서관이었다. 북트럭(=책수레)조차 없어서 새로 사야 했으니 말이다.


거기다가 프린터가 있었지만 컬러가 아니었다. 흑백 프린터라니. 도서관에서는 프로그램을 많이 하기 때문에 컬러 프린터는 필수다. 포스터나 활동지를 비롯해서 컬러 인쇄할 게 잔뜩이니까. 그리고 여기 규모가 얼마나 큰데 당연히 있어야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을 했던 건 나뿐이었다. 여러 번 기회를 노려봤지만 결국 컬러 프린터를 사지 못한 채 근무를 끝마쳤다. 아직까지도 가장 한스러운 부분이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도서관을 둘러보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그만둘 거면 빨리 그만둬야 한다.'


2월에 잠깐 방문했을 때는 도서관 입구에서 컴퓨터만 만지작거리다 나왔기 때문에 그 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었다. 그냥 넓고 좀 오래됐구나 정도. 어차피 3월에 제대로 볼 거니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알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모를 일이다.


울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아직 학교에 대한 로망이 남아 있는 때였다. 근무 첫날이었으니까. 그리고 괜히 도망치는 기분이 들어서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나름의 도전 의식이 불탔던 것이다. 아무리 엉망이라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뭐 그런 사회초년생의 열정이랄까?


게다가 도서관 담당 선생님이 좋아서 일단 좀 더 있어보기로 했다. 나중에야 깨달은 거지만 담당 선생님은 정말 흔치 않은 타입의 교사였다. 이 부분만큼은 내게 행운이 따랐다고 생각할 만큼 좋은 인연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 이후로 할 일이 정말 많아져서 정신없이 처리하다 보니 그만둘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3월의 학교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바쁘다. 일이 많아지면 그만큼 부딪치는 사람도 많아진다. 그렇다. 나는 3월부터 여러 교사와 부딪쳤다. 그리고 내 성격상 옳다고 믿는 일에 대해 물러나지 않기 때문에 조용히 넘어갈 수 없었다.




나중에 친해진 다른 학교 도서관에서 일했던 쌤한테 말하자 우스갯소리로 "쌤은 첫 근무가 아닌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보통 신입이면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일이 많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학교 안에서 도서관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을 제대로 운영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그걸 방해하는 행위는 가차 없이 쳐내려고 노력했다. 그게 먹히든 안 먹히든 적어도 내 입장은 확실히 했던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그래도 학교 근무를 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했는데도 (그들이 의도했든 아니든) 무시당하는 기분을 수없이 느꼈는데, 만약 초반부터 숙이고 들어갔다면 그냥 호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이어질 이야기는 대부분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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