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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Nov 22. 2020

이틀 만에 찾아온 위기

대체 '온작품읽기'가 뭔데?


제목처럼 근무를 시작한 지 정확히 이틀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온작품읽기' 라는 것 때문이었다.


'온작품읽기'란, 독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생긴 교육 과정 중 하나이다. 초등학교 3~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기에 한 권 이상의 책을 온전히 읽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학교마다, 교사마다 진행 방식이나 명칭도 다르다.


수많은 복본(=동일한 책)의 미스터리가 어느 정도 풀렸다. 학교 도서관에는 대체로 자잘하게 2~3권씩 복본이 많긴 하지만, 20~30권씩 있는 책은 정말 존재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바로 '온작품읽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솔직히 화가 좀 났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도서 구입 예산이 얼마나 된다고 같은 책을 이렇게 많이 산다니. 복본은 기본적으로 장서의 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사서라면, 최대한 지양해야 하는 일이다. 교과 과정 때문에 필요하다면 각 학년 예산으로 구매해서 구비해두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 심지어 온작품읽기를 꼭 한 종류의 책만 활용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공문이 있었다. 물론 아무도 그걸 신경쓰는 것 같진 않았다.


그것부터가 마음에 안 드는데, 도서관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은 둘째 날에 갑자기 부장교사가 책을 찾으러 오겠다고 했다. 당시 도서관은 휴관 중이었지만 어떤 책이 있는지만 보겠다기에 일단 알았다고 답한 후, 급한 대로 내가 먼저 찾아봤다. 그런데 시스템 상에는 분명히 있는 도서들이 몇 종류 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머리가 아팠다. 만약 실제로 없는 거라면 대규모 분실이니까.


일단 있는 책으로 안내를 해야겠다 생각하며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펼쳐진 상황에 진심으로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났다.




학교도서관은 기본적으로 1인 사서로 운영되기 때문에 사실 화장실 한 번 다녀오기도 부담스럽다. 다행히 내가 일했던 도서관은 별관 구석이라는 접근성이 낮은 곳에 위치해있었고, 아직 휴관 중이었으므로 그러한 부담에서 조금은 자유로웠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양문 중 하나는 잠근 채 이용하고 있었고, 멀리 갈 때는 꼭 문단속을 하고 갔다. 잠깐 화장실에 갈 때는 잠그지는 않더라도 모든 불을 끄고 다녔다.


따라서 당시 도서관은 한쪽 문은 잠겨있었고, 불은 모두 꺼져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5~6명 정도 되는 애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분노가 끓었지만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얘들아, 왜 여기에 들어와 있니?"

"선생님이 책 찾으러 가라고 했어요!"


아이들은 해맑게 얘기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애들이 지나가다가 그냥 들어올 만한 위치가 아니니까. 어쨌든 불이 꺼져있었고 밖에 휴관이라고 쓰여있음에도 함부로 들어온 사실에 대해서 잘못된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부장교사가 등장했다.


나는 화를 억누르며 차분히 부장교사에게 말했다. 학생들을 데려온다면 미리 말을 해주셨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오늘은 확인만 하신다고 해서 된다고 한 것이며, 시스템 문제로 인해 당장 책을 가져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부장교사는 좀 당황하는 것 같았지만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파악했던 것처럼 도서관에 남아 있는 책은 대부분 스무 권이 채 되지 않았고, 결국 그들은 별 소득 없이 돌아가야 했다.


도서관은 사서의 근무 공간이다. 누군가 수업 중인 교실이나 회의 중인 교무실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는 것처럼, 적어도 휴관 중인 도서관에는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무수히 많이 펼쳐질 무례한 에피소드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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