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L'Amant)

지나고나서야 깨닫는 사랑의 가치

by STAYTRUE

메콩강을 가로지르는 여객선 위, 두 갈래로 땋은 머리에 속이 훤히 비칠 듯한 낡은 원피스에 낡은 구두를 신고 남자 모자를 쓴 프랑스 소녀(제인 마치)가 있다. 빨갛게 바른 루즈는 입술을 제대로 칠하지도 못했고, 굽이 있는 구두는 소녀가 제대로 걸을 수 없게 한다. 이 소녀는 이렇게 어린 소녀임에도 그 어떤 관능미를 뿜어내고 있다. 난간에 기대어 있는 이 소녀에게 한 중국인 남성(양가휘)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기숙학교가 있는 사이공까지 자신의 차로 태워다 주기로 한 남자는 중국인 부호이다. 15살(남자에겐 17살이라 하는)의 소녀와 32살의 중국인 남자는 이렇게 만남을 시작하게 된다.


차 안에서 옆에 놓인 소녀의 손가락을 만지다가 그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고, 깍지를 껴 버리는 남자의 행동에 창밖만 보며 대답 없던 소녀는 끝내 달아오른 듯해 보인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두 남녀 모두 옷을 벗고 있지 않아도 이 두 남녀가 느끼고 있는 은밀한 쾌락을 고스란히 전해 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괜히 온몸이 간지러워진다.
그 날 이후에 자신의 학교 근처에 차를 대놓고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를 생각하며 소녀는 늦은 밤 침대 위에서 자신의 몸을 더듬는다. 그 중국인 남자로 인해서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그를 따라 간 그의 집은 시끄러운 거리 옆에 자리해 있다. 거리의 온갖 소리가 전해지는 방, 그곳에서 둘은 육체의 관계를 갖는다. 성에 눈 뜬 두 남녀의 육감만이 존재하는 그 어두운 방에서 남자는 말한다. 당신을 사랑하게 될까 봐 두렵다고. 그런 그에게 자신을 다른 여자들과 같이 대해달라는 소녀의 말은 그녀를 더욱 영악하게 보이게 하기도 한다. 이런 금지된 일을 저지른 그녀에게는 아편에 중독된 죽이고 싶은 오빠, 나약한 남동생, 광기의 엄마가 있고, 그들과 자신을 둘러싼 지독한 가난이라는 고통이 있었다. 그녀가 기존의 삶에서 일탈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이유들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가기 위해선 이런 수치심도 잃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여자, 어린 나이에 순결을 잃은 여자. 그녀는 기숙사로 돌아온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리고야 만다.


자신에게 푹 빠진 남자, 그의 돈만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소녀에게 남자는 말한다. 이런 사랑은 너무 강해 다시는 할 수 없다고. 결국은 떠나야 하는 소녀와 얼굴도 모르는 부자인 중국인 여자와 결혼해야 하는 남자의 사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를 깨닫고 점점 초췌해지는 남자를 보면 소녀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런 그의 결혼식 날, 사람들 너머에서 식을 지켜보는 소녀와 그의 눈이 마주쳤을 때, 그 둘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의 빈 집에 들어가 죽어가는 화분에 물을 주는 소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지나간 기억에 대해 분명 그리움과 아쉬움이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로 떠나는 배를 탄 그녀가 본 것은 조심스레 숨어서 버려진 듯 움직이지 않던 그의 차였다. 몸을 앞으로 내밀고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바라보던 소녀. 긴 항해의 어느 날 밤 뒤늦은 사랑을 깨닫고 주저앉아 우는 소녀의 모습은 육체적 쾌락에 숨겨져 비로소 깨닫지 못했던, 하여 육체적 사랑이 끝이 난 걸 깨닫는 순간 그녀가 지난 사랑을 오롯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이 끝나고 몇 차례의 이혼과 책의 집필이 끝났을 무렵 걸려온 그의 전화. 예전처럼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영원히 그녀를 사랑할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를 사랑할 거라는 그를 보며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만 이어질 수 없었던 절절한 사랑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1920년대 말의 프랑스 점령 치하의 베트남 사이공을 배경으로 한 영화 <연인>은 단순 에로틱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절대 영화의 정사신들이 초점이 될 수 없는 영화인 것 같다. 떠나고 나서야 깨닫는 사랑의 가치를 잘 나타내 주며, 마지막에 이르러 더욱이 할 말을 잃게 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소녀의 몸에 남은 기억, 그것이 수치스럽지만 결코 지우고 싶지 않은, 지워지지 않을 사랑의 기억임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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