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편인가 –선택과 연대의 윤리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한다.
크고 작은 갈림길 앞에서,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사소한 것들까지 선택을 밥먹듯이 한다.
그러나 그 선택 하나하나가 사실은 어떤 편을 드는 일이라는 걸,
살아갈수록 실감하게 된다.
말을 아낀다는 건 중립이 아니라,
이미 한쪽의 편이 되는 일이다.
모른 척 지나간다는 건, 그 고통을 외면한 쪽에 서는 것이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결국 하나의 선택이다.
그래서 삶은 곧 편들기의 연속이다.
그 편들기란, 옳고 그름을 가르는 싸움만은 아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에 서는 일이고,
어떤 가치를 살리는 일이며,
어떤 존재와 함께 걷는 일이다.
편을 든다는 건 단지 싸우는 게 아니라,
연대하는 것이다.
“나는 너의 편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의 외로움을 나누고,
누군가의 아픔에 어깨를 내어준다.
그 연대는 말없이도 가능하다.
상처 입은 이를 바라보는 눈빛 하나,
불편한 진실 앞에 잠시 멈춰 서는 그 시간 하나.
그 모든 것이 누군가를 향한 조용한 편들기다.
아기였던 우리는 어느 편에도 서 있지 않았다.
하지만 자라면서부터 우리는 조금씩 어딘가에 서야만 했다.
부모의 편일까, 자식의 편일까.
친구의 편일까, 선생의 편일까.
약자의 편일까, 강자의 편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 양심의 편일까, 내 이기심의 편일까.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편을 든다.
그 편이 행동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말로, 혹은 침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나는 매 순간 선택을 한다.
말하자면, ‘편들기’는 인간 존재의 가장 단순하고도 근본적인 윤리다.
어떤 문제 앞에서, 어떤 갈등 앞에서, 나는 묻는다.
나는 누구의 편에 서야 하지?
그 질문은 정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무심코 버릴 때,
나는 환경의 편을 떠나는 것이다.
내 아이에게 소리칠 때,
나는 보호자인가, 지배자인가.
누군가의 아픔을 모른 척할 때,
나는 어떤 세계의 구성원으로 남는가.
그 작은 장면들 속에서 우리는 늘 편을 고른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든다.
젊을 땐 때로 우유부단할 수 있다.
조금 비겁할 수도 있고, 눈치도 보게 된다.
하지만 결국 시간은 사람을 닮게 만든다.
따뜻한 것의 편에 서온 사람은, 늙어서도 따뜻하다.
작은 것들의 손을 잡아온 사람은, 마음이 작아지지 않는다.
편들기는 곧 윤리다.
무엇을 위해, 누구와 함께 살아왔는지 묻는 일이다.
내가 들어준 편들이, 나를 이루고,
내가 함께한 연대들이, 나의 얼굴을 만든다.
그러니 이제는 이렇게 묻고 싶다.
내가 마지막 날에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어떤 편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누구의 편으로 살아왔노라,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을까.
삶은 결국 선택이다.
그 선택이 곧 연대이고,
그 연대가 곧 사랑이며,
그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유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