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름과 내려앉음 사이
“개구리와 귀뚜라미의 점프를 알아?”
등산길에서 귀촌 선배가 물었다.
둘 다 작은 몸으로 세상을 향해 뛰어오른다.
하지만 그 점프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개구리는 한 번 뛰면 방향을 바꿀 수 없다.
발을 떼는 순간, 궤적은 이미 정해진다.
운명의 장난처럼, 혹은 삶의 무게처럼, 중간에 머뭇거리거나 돌아설 수 없다.
개구리의 점프에는 단호한 결단이 있다.
착지 지점에 무엇이 기다리든,
예측할 수 없는 그 순간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용기란 아마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귀뚜라미는 다르다.
날개가 있어 점프 중에도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중력을 거슬러 떠 있는 동안,
바람과 마음의 흐름을 읽으며 궤도를 조정한다.
귀뚜라미의 점프에는 자유가 깃들어 있다.
그러나 자유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
끊임없이 결정하고, 수정하며,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두 존재를 떠올리며 내 삶을 비춰본다.
때로는 개구리처럼 단 한 번의 결단으로 전력을 다해야 하고,
때로는 귀뚜라미처럼 흐름에 몸을 맡기며 유연하게 나아가야 한다.
결단과 자유, 운명과 선택 사이에서 나는 언제나 점프하고 있는 존재다.
점프 중에 방향을 바꿀 수 없다는 건, 내딛은 발걸음을 끝까지 믿는 용기와 같다.
점프 중에도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건, 흐름 속에서 자신을 조율하는 지혜와 같다.
누구에게든 언젠가 점프를 해야하는 어느 순간이 있다.
발을 내딛는 찰라 두려움이 따라오고, 미래는 안개처럼 흐릿하다.
그러나 개구리의 결단과 귀뚜라미의 자유를 함께 기억한다면, 우리는 조금 더 현명하게, 조금 더 부드럽게 뛰어오를 수 있다.
점프란, 떠오름과 내려앉음, 그리고 그 사이에 숨어 있는 방향의 선택이 어우러진 작은 삶의 연습이다.
오늘 나는 개구리처럼, 혹은 귀뚜라미처럼 어디로 뛸지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발을 뗀 순간부터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내가 향할 곳을 향해 힘껏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깨달음이 곧 결단이 되기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