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서평
<폭력에 대응하는 방식에 관한 소설>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는 '기괴하다'는 생각을 했다. '노벨상을 탔는데 왜 이래?' 하고.
이 소설은 어떤 이야기인가.
경하라는 인물이 친구 인선의 집에 가서 과거에 부모가 겪었던 4.3 사건의 참상을 만나는 이야기이다.
광주의 참상에 관해 쓴 작가 경하는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난다. 그렇게 나약한 경하가 손가락이 잘려 입원한 친구 인선을 만나러 가자 인선이 지금 바로 제주에 가서 혼자 남겨진 앵무새를 구해 달라고 부탁한다. 경하가 눈보라를 뚫고 제주에 가 보니 새가 죽어 있다. 경하는 새를 묻어 주고 돌아왔는데 어쩐 일인지 새가 다시 보인다. 작업실에 가니 손가락이 잘리지 않은 인선도 와 있다. 경하는 자기가 혼이든지 인선이 혼이든지 둘 중 하나라 생각한다. 그런 경하에게 인선이 4.3 자료들을 보여주며 끔찍한 일을 겪은 부모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하가 만난 친구 인선은 어떤 인물인가. 행동력 있고 손가락쯤 없어도 그만이라 생각하는 쿨한 사람이다. 또한 그의 엄마에 이어 끈질기게 4.3. 때 실종된 외삼촌을 추적하는 인물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이야기가 기괴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경하가 4.3.을 만나는 과정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4.3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라면 인물이 필연적이고 점진적으로 4.3.의 진실을 향해 끌려 들어가야 한다. 만약 살인 사건을 다룬 소설이라면 주인공이 필연적으로 차츰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가다가 마지막에 진실을 알게 된다는 구조로 쓸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경하라는 인물이 4.3을 만나야 할 필연적인 이유도 없고 4.3의 진실을 향해 서서히 끌려 들어가지도 않는다. 4.3의 진실을 향해 이야기가 진행되긴 하는데 혼자 제주도로 가서 느닷없고 뜬금없이 인선의 혼을 만난다. 가는 도중에 끊임없이 내리는 눈을 장황하게 묘사한 이유는 또 무엇이고 새는 또 왜 등장하는가. 4.3을 만나러 가는 과정이 앵무새 때문이라니. 제주에 도착해서도 4.3을 만나는 아무런 계기도 없다. 그저 병원에 있어야 할 인선의 혼이 찾아와서 4.3을 이야기해 줄 뿐이다.
서사 구조로 따지면 엉망진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쓴 이유가 있을 거라고, 작가가 미숙해서 이렇게 쓰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작가의 의도를 떠올려 보았다. 그러고는 알았다. 이 작품은 경하라는 인물이 4.3. 사건을 만나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하는 작품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4.3의 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 진실을 밝힐 이유가 없다.
이 작품은 나약한 경하가 4.3에 대응하는 인선과 인선 어머니의 태도를 보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인선의 대응 방식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잊지 않는 것이 폭력에 대응하는 인선과 인선 어머니의 방식이며 그것이 곧 혼을 위령하고 애도하는 방식이다.
이 작품은 리얼리즘에 입각한 서사적 구조를 버리고 신화적, 환상적, 시적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서사적 시각으로 보면 기괴해 보이는 것이다.
경하가 폭설을 헤치며 제주 중산간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새의 죽음을 목격하고 촛불 아래서 인선의 혼을 만나 4.3으로 안내되는 이유가 다 이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
폭설은 역사와 개인이 맞닥뜨리는 질곡의 상징일 테고 새는 연약한 생명을 가리키며 인선은 그 연약한 생명까지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는 의미일 테다. 촛불 역시 연약한 생명을 뜻하는 동시에 위령의 의미가 있고 인선의 혼을 통해 4.3 이야기를 듣는다는 설정도 혼이 되어서까지도 4.3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설정이다.
따라서 서사적 인과율로 보면 이상하고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신화적 시적 전개로 보자면 자연스럽고 애절하며 작가의 의도가 잘 표현된 작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재구성해 보면 폭력에 절망한 경하는 자살을 시도하다가 인선을 만난다. 인선은 손가락이 끊어지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작은 생명인 새를 구하고자 한다. 경하는 인선의 뜻에 따라 폭설을 뚫고 가지만 새는 죽어 있다. 인선은 혼이 되어서라도 잊지 않으려고 제주에 나타나 4.3희생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둘은 애도의 장소로 가서 촛불 아래 애도한다.
책의 제목 '작별하지 않는다'는 '잊지 않겠다'는 의미이고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나약한 우리가 폭력에 대응하는 방식이며, 억울한 혼을 위령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이 작가의 메시지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