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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물작가 윤 Oct 03. 2024

죽음과 변장

선물작가의 세 번째 편지

편지를 받고 다시 반 년 즈음 흘러 2023년이 밝고도 한 달 반이 지났습니다.

아직 시작이야, 라고 하기엔 음력설마저 지나가 버렸고, 벌써 겨울이 끝나가, 라고 하기엔 이렇게 얼렁뚱땅 시작해버린 한 해를 수습하고 싶습니다.


‘선물’이라고 불러주셨는데, 제가 정말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만한 사람일까요?

영월에서 사귄 첫 친구이자 사진작가인 Y가 어제 통화로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게 제일 위험한 것 같아.’라고 하더군요. 내가 그럴만한 사람인지, 쉽게 의심하는 저는 여전히 두려운가 봅니다. 말로 뱉고, 자기 성찰을 해도 두려움은 쉬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봐요. 그럼에도 나무님의 ‘두려움도 반짝일 수 있지 않을까?’란 말이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그러니 자신 없지만, ‘선물작가’가 되고픈 제 열망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그 반짝이는 두려움을 토닥이기 위해서라도, 계속 그리 불러주세요.     


잘 죽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냐 물으셨죠?

저는 삶보다 죽음이 가깝습니다. 초등학교 때도 들풀의 죽음, 바람의 소멸처럼 자연의 생명보단 죽음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인간, 아니 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진지한 생각은 중학교 입학 직후 봄비라기엔 아직 차가운 비가 내리던 점심시간이 처음이었어요. 교복이 젖도록 혼자 교정을 걸으며, ‘삶’은 무엇인가를 오래도록 생각했어요.

죽음으로 가는 여정인 것 같아 허무주의적인 생각에 빠지기도 했고, 앞으로 너무 많이 남은 살날이 무겁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출발은 ‘삶’이지만, 도착점이 ‘죽음’이니 빨리 가고 싶었어요.

남은 삶이 그리 호락호락할 것 같지 않았거든요.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멋진 삶이라고 해 봐야 모든 게 그리 즐거워 보이지 않았어요. 의사나 변호사가 된다 한들 늘 아프거나 힘든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사업은 의미보다 돈을 좇아야 하고, 사회사업은 선민의식이 아닐까 고민했고, 그래서 체게바라, 윤동주, 이상을 막연히 동경했던 것 같아요. 길지 않은 삶, 하지만 치열하게 모든 걸 쏟아부은 삶.

그런 생각들에 빠져있는데 중학교 3학년 선배 세 명이 창문에 서서 절 가리키며 ‘타타타’란 노래를 부르더군요.

“비 오면 오는 대로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음음음, 아하하~ 까르르. 1학년이 미쳤나봐.”하면서요. 학년은 명찰 색으로 구분했었어요. 노랑색 명찰, 차가운 봄비, 가꿔놓은 사철나무, 창문 사이로 웃는 세 명. 아무도 없는 운동장. 점심시간이 끝나는 예비종.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을 것 같은 깊고 어두운 사춘기였던 것 같아요.

이후로 계속, ‘삶’보다 ‘죽음’을 생각해요. 어쩌면 죽을 날이 가까워서야 ‘삶’에 대한 미련이 생겨 ‘삶’을 다시 오래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아직 죽지 못하고 있는 건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이 있어서예요. 참 세속적이지만, 여러 의미가 있어요. 어쨌든, 표면적으로 열망하는 건 그래요. 사실 단편 열여섯, 쓰다만 장편 다섯, 몇 번씩 다시 써 놓은 수상 소감, 어쩌면 이것들은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요. 그러니 이게 죽음으로 가는 발목을 잡는 건 아니에요. 

아마 제가 삶을 붙들고 있는 건, 장애인 동생과 연로하신 어머니일 거예요. 장녀의 책임감, 가족에 대한 사랑, 애증이었던 과거, 수없이 많은 감정이 섞이고 얽힌 뿌리가 삶을 흐르게 해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미래보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오늘, 바로 내일이 중요해요. 그래서 잘 죽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살아요.     


‘살아요’라고 뱉어놓고 보니, 최근엔 미래를 걱정해요. 그런 저를 보며 나이를 먹었고, 먹는구나, 싶죠.

삼십 대 끝자락에서도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모든 게 의미있고 자양분이 될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사십 대가 된 최근엔 여기저기 아프면서 죽지 못하고 회갑이 지나 버리면 어쩌나 싶어요. 소설가가 되지 못해 책 인세도 없고, 국민연금은 짧은 직장생활들로 몇 년 안 냈고, 노후 자금을 위한 연금은 급해서 해지한 지 오래거든요. 제 또래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가 포스터, 우표로 있을 정도였어요. 초등학교도 1, 2부제로 나눠서 했고요. 지금 초등학교 세 반이 합쳐진 게 한 반일만큼 또래 인구가 많아요. 이들이 다 노인이 되면, 저출산 국가에 지금의 노인 일자리나 노인 연금이 있기나 할까 싶고요.

미혼이라 아이 키우는 비용이 안 들어갔지만, 노인이 됐을 때 관심 가져줄 가족도 없는 셈이죠. 그렇게 결국 외롭게 죽을 거라면, 지금, 이 순간 가는 건 어떨까?     



 역시 엉킨 원가족의 뿌리가 지금은 안 된다네요. ‘삶’의 영역에 붙들어두는 가족.

그나마 다행인 걸까요?

잘 살고 싶은 사람과 잘 죽고 싶은 사람, 잘 사는 사람과 잘 죽은 사람.

이렇게 쓰고 보니 네 유형 중에 잘 죽은 사람만 이질적이네요.

“그 사람 잘 죽었다.”라고 말하는 건 극히 드물잖아요. 천하에 몹쓸 사람으로 공인된 사람조차 죽음 앞에선 말을 아끼니까요. 그나마 “호상(好喪)이네요.”를 쓰는데 한평생 잘 살다 충분히 나이 들어 돌아가시는 것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단 생각이 들어요.


잘 죽기 위해선 결국 나무님의 질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네요. 잘 살다가 죽는 것이 잘 죽을 준비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 사실 질문은 어떻게 잘 살려 애쓰냐,는 거였겠구나 싶네요.

분명 정신없이 바쁘게, 나름 다양하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순간마다 최선을 다했는데 왜 저는 지금 이 순간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미래도 보이지 않을까요? 죽음을 늘 가까이 두어, 되려 잘 살려 애쓰지 않은 건 아닐까요? 매 순간의 애씀이 쌓여 잘 살아지고, 잘 죽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미래를 설계하고 지금 이 순간에 살아야하는데, 꿈만 꾸면서 순간의 조각들을 모으기만 해서 이런 걸까요? 요즘 들어 진작 포기했어야 하지 않을까? 등단하고도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은 10%도 되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등단도 못했으면서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해요. 넷플릭스 미국 드라마 ‘너의 모든 것’에서 주인공이 B급 연기하는 중장년들이 서는 LA의 작은 무대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Young, hungry and broke masquerading as actors, wirters, directors to take the pain out of being nannies, baristas, disappointments.”(원작, Caroline Kepnes, <Hidden bodies>, Netflix <You> 시즌 2)

젊고, 배고프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보모, 바리스타, 실망에서 벗어나려고 배우, 작가, 감독으로 변장한다.     

제가 유명한 작가가 되겠단 내일의 희망이 없으면 절망하고 죽음에 더 다가갈까봐 작가로 변장하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나무님은 무언가 다른 것으로 변장한 적이 있나요? 혹은 지금 쓰고 있는 가면이 있나요? 


2023. 2. 21. 15:42    영월에서 선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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