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기쁨은 흐릿하게 오고 슬픔은 명랑하게 온다.
난
거울!
말 없이
보여줄 뿐.
낯설어 하긴;
그냥 있는 그대로
두 눈으로 바라보면 돼
내 눈 너머 보이는 저 아이
쟨 얌전히 웃다 우는 사람이야.
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를 바라고
바란 게 이뤄지면 흐뭇해야 마땅한데
살그머니 웃더니 희미하게만 흡족해하네?
바라지 않았던 일 겪고 애달파 허덕거리다가
어느새 흐린 데 없이 환하고 산뜻하게 울먹이더라
가끔 눈 감을 테니 단정한 네 눈물 가랑가랑 맺으렴
나는 춤추는 중 / 허수경
기쁨은 흐릿하게 오고
슬픔은 명랑하게 온다
바람의 혀가 투명한 빛 속에
산다, 산다, 산다, 할 때
나 혼자 노는 날
나의 머리칼과 숨이
온 담장을 허물면서 세계에 다가왔다
나는 춤추는 중
얼굴을 어느 낯선 들판의 어깨에 기대고
낯선 별에 유괴당한 것처럼
- 허수경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