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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언니 Aug 27. 2023

호구의 사랑

호구의 순기능과 역기능


마음 여리고 정이 많았던 꼬마는 늘 상대방의 감정의 우선이었다. 그 사람이 시무룩해있으면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보기 전에 내가 뭐 잘못한 건 없는지부터 반추해 보았다. 결국 뭐라도 찾아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손 내미는 쪽은 나 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런데 연애라고 다를쏘냐. 역시는 역시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you're first. 연애의 마침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을 때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한테 맞춰주는 건 고마운데 내가 너에게 채워줄 수 있는 틈이 없어.

그래서 나는 쓸모없는 사람으로 느껴지곤 해.


몇 마디가 더 오가고 난 뒤 잘해줘도 난리냐며 아쉬운 거 없으니 훠이훠이 떠나라며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섰다. 그 이후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가끔 저 말이 생각나고는 했다.


정말 고민하다 얘기한 거구나, 나름 용기 내서 얘기한 거구나....라고.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는 거에 만족할 줄 알았지 관심과 사랑은 괜찮다고 손사래 쳤다. 이 마음조차도 배려이자 사랑의 표현이었다고 여겼다. 좋은 마음에서 그랬다 하더라도 때로는 상대방을 위한 마음으로 이게 최선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였다. 위로와 응원을 하는 만큼 나도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비어있는 마음의 한편을 채움 받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는 여전히 주는 게 편하고 받는 거에 인색하며 어색해한다. 나의 겸양이 의도치 않게 배려의 아이콘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왜 너는 네 생각이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느냐고, 감정을 절제하고 누르기만 하느냐는 걱정과 서운한 툴툴거림을 듣기도 한다. 이러면 변태.. 같을 수도 있겠지만 그 마음이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직 내 한 몸 비빌 곳이 있긴 하구나 싶은 묘한 안도감이 들어서.


사랑에 완성이라는 게 있을까.

각자의 환경에서 다른 일상의 경험을 하다 겨우 연결되는 우리가 나만큼 너를 생각하며 서로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떠나지 않을 때 40년째 부부로 살고 있는 가장 가까운 한 커플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엄마는 말했다.


좀 더 충족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늘 있지. 근데 그거 없어도 살아지더라. 살다 보면 그 사람의 좋은 점이 하나도 없는 거 같아도 단지 '이 사람이라서' 주는 안정감이 있거든.

그건 눈뒤집힐 때 느껴지는 순간의 감정 그 이상이라서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보다도 찾기 어려워.

그래서 더 소중한 거야.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게 그렇지만 사랑도 어쩌면.

그저 물리적인 시간이 흐르고 흘러야 겨우 알게 되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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