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예찬

2026년 4월 13일 (맑음)

by Stella Lee

"길몽을 꿨어. 로또 사야 할 것 같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부자리에 누운 채로 무심코 한 말을, 남편은 잊지 않았다.


지난 토요일 오후 6시 반이 조금 경과한 시각, 그가 말했다.


"추첨 시간 전에 로또 사러 가야지."

동네에는 복권 판매소가 두 곳 있는데 더 먼 쪽이 이른바 명당이었다. 1등은 1회, 2등은 다회 배출. 통계학적으로는 전혀 무의미한, 히 비과학적이고 미신적 운을 기대하며 부부는 무언의 합의 하에 원거리 여행을 택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니 논밭이 펼쳐졌다. 서울에 살 때는 고층 빌딩에 가려지지 않은 하늘을 마음껏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곳은 고개를 크게 젖히지 않아도 시야에 걸리는 인공물이 없다. 문자 그대로의 허허벌판이다.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어진다. 잔뜩 갈린 땅 위로 해가 기운다. 쭉 뻗은 지평선 위에 폭신한 분홍빛에 감싸인 석양이 둥실 떠 있다. 19세기 풍경화를 떼어다 붙인 듯한 그 아름다운 광경을, 카메라와 눈, 그리고 가슴에 담아 로또 5천 원어치와 함께 집으로 가져왔다.

로또는 5건 모두 낙첨이었다. 복이 달아날까 싶어서 반나절이 넘도록 애써 근질거리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헛수고였다.

그러나 그림은 남았다.

1일 1 그림을 시작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모든 소재를 산책길에 발견하고 있다. 하나 같이 그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어여쁜 것들… 허약한 내가 매일 색연필을 들도록, 마을 여기저기의 들꽃, 나무, 논밭이 색채와 형태를 제공해 주고 있다. 핀터레스트를 들여다볼 필요도 없이, 집 밖으로만 나가면 언제나 새로운 발견이 있다.


Inspiration is everywhere.


젊은 시절, 아직은 모호했던 소망을 담아 싸이 월드의 대문에 걸어 뒀던 이 문장은 수십 년 후 현실이 되었고, 덕분에 내 팔레트는 나날이 풍부해지고 있다.

퐁텐블로 숲에 비할 바는 없겠지만, 매일 놀랍도록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는 전원의 풍경을 조금씩 모사하다 보면, 언젠가는 밀레처럼 대체불가능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또 1등보다 큰 야망을 살짝 품어 본다.

사족 : 효과 없었던 길몽은 비밀로 두기로.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6화민들레의 당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