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라일락 Jan 27. 2022

강아지도 털빨이 있다

깨끗하게 미용한 우리 집 반려견

  사람도 남녀 불문하고 머리빨이란 게 있다. 머리스타일에 따라 사람들이 '찰떡같다' '신의 한 수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확실히 사람 머리는 짧은 것보다 긴 머리가 얼굴 커버를 잘해 준다는 것.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 강아지는 말티즈라 소위 몽실몽실, 부들부들 마치 한 마리 양같이 털이 자라난다. 귀여웠던 녀석이 한차례 미용을 하고 나면 여우처럼 날카로워진다. 나는 곰돌이 컷, 닭발 컷 등 강아지의 스타일을 딱히 추구하는 편은 아니다. 털이 너무 많아 위생적으로 안 좋아 보이거나 발이 미끄러워 뒤뚱거릴 때면 그 모습이 안타까워 보인다. 그래서 미용을 시킨다.


  사실 바리깡이고 뭐고 모든 미용 용품들은 갖춰져 있는데 내가 워낙 똥 손인 데다가 주인이 깎으면 움직이고 짖고 생 난리를 피워 도저히 깎일 수가 없다. 미용은 대게 삼 개월에 한 번씩 하는데 날짜를 꽉 채우고 나서 보면 털이 너무 길어져 있다. 그래서 소변을 볼 때 생식기 뒤편 털까지 묻어 나와 노랗게 색이 묻어나곤 한다. 혹은 털 사이에 변이 대롱대롱 걸려있거나. 


  오늘은 반려견 딸기가 미용을 했다. 병원에서 운영하는 미용샵에 다닌 지 4년 정도 됐나. 녀석은 조용하다. 딱히 스타일이 있는 게 아니라 '깨끗하게' '단정히 밀어주세요'정도다. 미용을 다하고 나니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극세사 이불 위에 누워 꾸벅꾸벅 온몸을 말고 잠을 청하고 있다.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강아지가 갑자기 미용을 하면 수치심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구석에 가 있거나 잔뜩 존 표정을 지으며 일명 '쭈구리 모드'가 되기도 하는 것이라 한다. 이런 경우에는 미용을 하기 전, 후에 항상 어딜 간다고 이야기해주는 것도 좋고, 잘하고 왔으니 간식을 주는 것도 좋다. 날씨가 추운 날은 몸이 추울 테니 담요를 덮어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털이 많을 때 누워있는 것과 헐벗고 온몸을 말고 있는 것은 천차만별이겠지. 미용사가 클리퍼로 딸기 목덜미 뒤편이 살짝 긁혔다며 시인했다. 어쩐지 기존에 계셨던 미용사 선생님이 안 계셔서 불안했는데 사달이 난 것이다. 또, 딸기가 뒷다리 힘이 없어서 배를 다 못 깎았다고 말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혹여나 아파서 낑낑대지는 않으려나 미용이 끝난 후 한참을 관찰했다.


  오랜 시간을 견뎠을 반려견 딸기의 몸을 손으로 짚어보았다. 검버섯, 지방종이 여기저기 나있고, 등도 조금 굽은 것 같아 등을 손가락으로 짚어보았다. 검버섯을 따라 그간 녀석과 함께 걸어왔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강아지는 털빨이라고 하지만 털을 밀었건 안 밀었건 내게는 똑같은 강아지다. 깨끗하게 털을 민 딸기를 보고 있자니 '딸기도 나이를 먹었구나' 싶으면서 나도 참 오래 키웠다. 나도 늙었구나를 새삼 느꼈다. 

검버섯이 나면 어때 아직 나한테는 새끼 강아진 걸. 앞으로 녀석과 함께 걸어갈 시간이 더 많은걸. 

작가의 이전글 주말, 일일드라마가 중독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