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들마다 시간이 묻어나 있다
엄마의 유품들을 정리하며 피식 웃음이 나온 순간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출근할 때마다 내 원피스나 바지, 코트 등을 입었다. 그 시절, 엄마는 옷을 사기엔 아깝고 나와 체구가 비슷하단 이유로 내 옷을 함께 입었다. 형제자매가 없었던 나는 엄마와 항상 친구처럼 지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내 옷을 엄마와 공유했다.
언론고시 준비를 한다는 이유로 오피스룩 스타일의 원피스를 꽤나 많이 샀었다. 엄마는 오피스룩 원피스를 60대에 입었다. 60대여도 50대로 보이는 동안 외모의 엄마는 옷을 잘 소화했다. 엄마가 입으면 옷들이 꼭 명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유품을 정리할 때 정말 엄마의 물건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정리한 옷들은 새 옷들이 더 많았다. 엄마가 사서 쟁여놓은 새 옷 말이다. 엄마는 항상 할인하는 상품들을 많이 사놓았다. 원피스 속에 받쳐 입는 나시, 스타킹, 기모 폴라티 등 계절마다 입을 수 있는 옷들이 한가득 남아 있었다. 나는 옷들을 뒤적거리며 무조건적으로 세일 기간에 많이 사두자는 엄마의 마음 한편을 들여다보았다.
옷이라고 해서 무조건 엄마와 공유를 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새 옷을 산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내가 산 옷이 새 옷인지 몰랐나 보다. 밖에 걸려 있는 옷을 입고 무작정 출근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왜 그 옷을 입고 갔냐며 버럭버럭 화를 냈었다. 분이 안 풀려 카톡으로 씩씩대기도 했었다. 현실 자매가 아닌 이건 뭐 현실 모녀와 딸의 모습이기도 했다.
엄마가 입었던 원피스를 입지 않은지 오래됐다. 옷들을 보고 있자니 엄마가 입었던 모습이 오버랩돼 애써 모른 척하려고 한다. 그래도 그 옷들을 보고 있노라면 엄마의 실루엣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면 가끔 그 옷을 꺼내본다. 그리고 가끔 그때 그 옷들을 엄마와 공유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훗날 딸을 낳는다면 저 옷을 물려주고 싶다. 할머니 엄마 그리고 딸까지 내려가는 옷이라고.
역사가 있는 옷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저 옷들은 기억하겠지. 엄마가 지나온 시간과 모습, 체취들을 품고, 지금은 긴 여행을 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