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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20. 2020

모녀가 나란히 앉아 5분 만에 화장을 한다

화장하는 겨울

모녀가 나란히 앉아 5분 만에 화장을 한다     

  화장품 가게 아르바이트를 할 때 중학교,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오곤 했다. 방금 나온 신상 셰도우부터 붉은색 톤의 틴트를 발라보며 입술을 날름 거리며 입술을 바른다. 얼굴 전체에 블러셔며 셰도 우등 색조 화장을 펴 발랐다. 조금 있다가는 여러 가지 색의 라이너도 눈두덩이 위에 그려본다. 수줍은 표정의 아이들이 색조화장을 여기저기 바르니 어른스러운 얼굴이 되어 매장 밖으로 나갔다.


  지금이야 유아용 안심 화장품부터 중 고등학생들을 위한 화장품이 있다지만 우리 때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엄마 화장대 앞에서 엄마가 화장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발라보고 싶다’라고 생각했고 엄마가 나간 날이면 립스틱 하나를 꺼내 입술에 괜히 한번 스윽 발라보곤 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화장하거나 귀 뚫은 아이들, 치마를 줄인 아이들을 교문 앞에서 잡으며 ‘대학 가서 해도 돼’ ‘나중에 원 없이 하는데 왜 지금 하나’라고 했지만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지금은 너무 원 없이 해서 화장 안 한 민낯의 어린 학생들이 풋풋하고 예뻐 보인다. 아 화장 안 해도 예쁜 나이가 저런 거 구나 가 느껴지는 나이. 하지만 본인들은 모르는 중학교 2학년. 최근에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과 엄마가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봤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거울만 보는 아이가 나왔다. 아이는 학교에서 가벼운 화장 정도는 가능하다고 돼있다며 탁상용 거울을 보며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를 열심히 했다. 또 요즘 중학생들 사이에서는 라이너를 두 개, 세 개, 네 개씩 여러 겹 그리는 것이 유행이라던가. 세월이 지났다지만 새로운 십 대의 트렌드가 마냥 신기했다.


 나 때는 지금의 가벼운 잡티를 가려주는 쿠션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얼굴이 최대한 환해 보여야 해서 C(클린 앤 클리어) 제품의 미백 화장품이 인기가 많았다. 귀신처럼 하얗게 동동 뜬 얼굴에 입술도 지금처럼 여러 가지 색깔이 나오지 않아 챕스틱을 발랐다. 그때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하얗게 뜬 얼굴에 붉은 입술의 내 모습이 왜 미의 기준이었는지 모르겠다. 미백화장품을 잘못 바른 날이면 피부가 뜨기도 하고 빨갛게 뭐가 올라오기도 했다. 중학교 때는 사춘기라 화농성 여드름이 잦을 때 기도했다. 농축된 여드름을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쭈욱 짜도 시원하게 짜지 지는 않았다. 나는 오히려 여드름을 가리기 위해 쿠션을 대체할 만한 제품을 엄마의 화장대에서 찾곤 했다.

17년이 지났다. 대학교에 가면 예쁘게 하고 다닐 것이라 해서 처음에는 열심히 화장을 했다. 하지만 역시나 나는 똥 손이었다. 그나마 회사에 다니면서 화장기술이 조금씩 늘었다. 나중에는 앞머리 그루프를 마는 것과 동시에 가방을 챙기고 파운데이션과 쿠션을 2-3분 만에 샥샥 하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나 하나만 챙기면 됐지만 엄마는 외할머니를 모시게 되면서 무척이나 바빴다. 집에 아무도 없어서 아침을 준비해 넣어놓고 먹어둘 죽과 간식거리들을 챙겨놔야 했는데 할머니가 밥을 달라고 보채서 이것저것 챙겨주다 보면 엄마의 아침은 빠르게 흘러갔다. 어떤 날은 아침에 머리를 못 감는 날도 많았다. 옷도 사지 못해서  내가 입던 옷을 며칠 동안 빌려 입기도 했다. 엄마의 아침은 할머니를 챙기면서 더 바빠졌고 화장은 어쩔 수 없이 출근할 때 하긴 해야 되는 것이 돼 버렸다. 오분만에 화장을 하는 스킬은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엄마의 쪼개진 시간일 것이다. 여드름 자국과 잡티를 화장으로 가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는 엄마의 모습이 아스라이 지나간다. 덮인 화장 아래로 엄마가 고생한 시간들이 피부결을 따라 축축하게 젖어있다. 어렸을 때는 왜 엄마는 사람들 앞에서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갑자기 웃어?라고 천진난만한 내가 물어봤었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 알 것만 같다.



아침이 되면 아빠와 할머니 나 모두가 분주해진다. 엄마 아빠는 널어둔 빨래를 정리하며 할머니 아침을 챙겨준다. 엄마와 내가 나란히 화장대 앞에 앉는다.

“엄마 늦었어 빨리 서둘러”

모녀가 나란히 앉아 퍼프에 파운데이션을 묻혀 샥샥샥 얼굴에 펴 바른다. 나는 눈두덩이에 분홍색 셰도우를 펴 바르고 눈 화장을 시작한다. 그 사이 엄마는 간단한 화장만 하고 입술을 바른다. 숨 가쁜 오 분 동안 엄마와 내 손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엄마와 나는 화장을 끝내고 하루를 시작하러 간다. 요즘 엄마의 소원은 오직 하나다. 오늘 하루도 아무 탈 없이 다들 건강하게 보낼 수 있기를. 그래서 가족 모두가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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