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라일락 Mar 31. 2022

웨이팅을 잘하는 사람은
나와 무엇이 다를까

기다림의 미학

  가게 앞에는 시장인지 콘서트장 티켓팅 줄인 지 헷갈릴 만큼의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처음 보는 풍경에 나는 벙쪄 있었다. 불과 일주일 전의 일이다. 


  지난주 친구가 퇴사를 했다. 퇴사 기념 겸 바람도 쐴 겸, 친구 얼굴도 오랜만에 볼 겸. 그러니까 겸사겸사 약속을 잡았다. 내 친구 Y는 나와 생일이 같다. 그런데 성격은 영 비슷한 듯 달랐다. 그녀는 추진력이 빠른 데다가 계획성이 좋다. 즐기면서 자신이 할 걸 다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나와 한날한시에 태어난 친구가 맞나 라는 생각을 줄 곧 한다. 

  우리는 예매해두었던 전시회를 다 보고 그 이후의 일정을 짰다. 우리가 짰다기보다는 Y혼자 다 리스트를 추려왔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일 번, 이번, 삼 번, 사번 번호마다 가게 상호명과 주소가 있었고 나는 이중에 고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Y야 설마 저 리스트 가게들을 다 가자는 건 아니지?"

  Y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맞다고 수긍하는 듯 나를 쳐다봤다. 리스트에는 수제 햄버거 가게, 도넛, 베이글, 수제비집 등 탄수화물 종류들이 그득했다. 탄수화물은 사랑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못해도 2-3kg은 거뜬히 찔 것 같았다. Y는 다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봤는데 여기 오면 꼭 들려서 사야 돼, 맛집이래. 특히 여기 베이글은 꼭 사야 돼"

  그녀의 두 눈은 초롱초롱 빛나 있었다. 결의에 차서 오늘은 꼭 이것들을 클리어하고 가겠다 라는 느낌이랄까.

  우리는 운 좋게 햄버거 집에 입성해 햄버거를 먹고, 바로 옆 도넛 가게로 이동했다. 점심때 줄이 늘어지게 서 있어서 뭐지? 싶었는데 Y가 찾아둔 도넛 가게였다. 오후 2시~3시에는 다행히 줄이 별로 없었다. Y는 '개이득'이라는 단어를 외치며 자연스레 도넛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소 수량으로 산 도넛이다

  나는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도넛을 안 사려고 했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더라. 조금이라도 기다리게 되니 원. 지금 안 사면 못 살 것 같고 못 먹어볼 것 같다는 마음이 발동했다. 10분 15분 정도 웨이팅이야 가볍게 수다를 떨면 금방 지나가니까 상관없었다. 그.런. 데. 다음 종착역 베이글 집이 남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초조한 듯 문만 바라보는 사람, 앉아서 수다 떠는 사람, 멀찌감치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 등 다양한 행동 패턴으로 베이글 가게 앞을 서성이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문 앞에 서 있는 안내원은 태블릿 피씨에 인적사항을 적으면 번호표가 스마트폰으로 전송될 것이고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우리의 번호는 서른일곱 번째였다. 약 한 시간 넘는 웨이팅 대장정이 시작됐다. 세시에서 네시 사이는 바람이 얼굴을 살짝 훑고 가는 정도여서 그다지 춥지 않았다. 나는 Y와 그동안의 근황 토크, 회사 이야기, 집안 이야기 등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역시 시간 때우기에는 수다 만한 게 없었다. 떠들다 보니 30분이 훌쩍 넘어가 있었다. 

  곧 우리 차례가 카운팅에 들어갔다. 세 번째, 두 번째, 첫 번째, 세상에. 매장 안으로 가니 빵 냄새가 코끝으로 새어 들어왔다. 이렇게나 많은 종류의 베이글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매장 안은 여전히 고르는 사람, 계산하는 사람으로 나뉘어 분주하게 돌아갔다. 

  나는 다이어트해야 돼, 아무것도 안 살 거야의 마음은 이미 날아간 지 오래. 뭘 사야 맛있게 먹고 잘 샀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나는 Y와 고민하며 쟁반 위에 신중하게 베이글을 골라 담았다. 다 사고 포장된 베이글을 손에 들었다. 벌써 쇼핑백만 두 봉지 째다. 매장 밖, 아까보다 두배는 더 되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유명세일까. 빵이 정말 맛있어서 일까. 아니면 둘 다 일까. 


  유명하고 맛있다고 입소문 난 가게는 일단 희소성을 가지고 있다. 막상 가면 '나도 하나 맛볼까?'라고 먹게 되는 마법 같은 힘도 있고. 나는 집에 와서 치즈와 베이컨이 든 베이글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 가게에 대해 뭐라 평가할 미식가는 아니지만 평범한 맛이었다.

  사람들은 왜 굳이 웨이팅을 하며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일까? 유명한 곳에서 시간을 들여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흔히 정복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반면 기다리는 시간 자체가 아깝고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유명 음식점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 나는 후자에 해당한다. 

  Y가 부러운 건 나처럼 조급해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기다리는 시간 자체를 즐기고, 열심히 그 시간 동안 사진을 찍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모습에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꼭 금전적인 것이 아닌 사람 자체에서 풍기는 에너지랄까? 오랫동안 아이돌 팬클럽 활동을 하면서도 그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닌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고, 문화고 즐거움이라 생각하는 그녀  Y. 맛집은 물론 혼자서 코로나를 뚫고 해외 콘서트는 물론 여기저기 혼자 고군분투하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마냥 신기했다. 나와는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사람 같달까?

Watting.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그게 음식이든 사람이든. 내게는 쫓기는 느낌이 다였었다. 그 여유로움을 다시 가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베란다에 내놓았던 베이글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때의 시간이 그대로 입을 타고 식도 안으로 전해져 왔다.  

작가의 이전글 털 속에 감춰져 있던 강아지 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