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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Oct 03. 2020

산타클로스는 없었다.

6살의 겨울날 유치원에서

산타클로스는 없었다.    

  산타할아버지의 정체가 탈로 나는 순간 나의 마음은 담담했다. 12월 25일, 선생님은 곧 있을 성탄절을 알리며 아이들에게 트리 꾸미는 시간을 갖자고 했다. 별부터 양말, 딸랑딸랑 종까지 ……. 아이들은 트리를 꾸미는 것보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생각에 한 껏 들떠 있었다.

“두나반 친구들 열심히 꾸며야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신다고 했어요”

친구들은 선생님의 말에 트리 꾸미는 것을 돕는 것은 물론 뒷정리까지 열심히 했다. 착한 어린이로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옆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을 도왔다. 정확히는 돕긴 도와도 내키지 않는 듯이.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지난밤 문 틈 사이로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엿들었다. 똘똘이 인형을 매일 안고 다녔던 나는 입버릇처럼 인형을 편하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포대기로 인형을 엎고 다니거나 유모차에 싣고 다니고 싶다고……. 늘 하던 말을 듣고 엄마 아빠가 머리를 맞대고 어디서 사면 좋을지 의논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느끼는 건데 산타클로스 행사도 하나의 이벤트성 기획이었다. 유치원 행사에서 하는 산타클로스 행사. 더군다나 20여 년 전 유치원에 왔던 산타할아버지는 너무 허술했다. 누가 봐도 테이프로 어색하게 수염을 붙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산타할아버지를 쳐다봤다. 나는 할아버지로 둔갑한 아저씨에게 짓궂은 질문을 괜히 해댔다.

  “산타할아버지 그냥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돼요?”

  그러나 산타할아버지로 둔갑한 아저씨는 옥상에 루돌프가 기다리고 있다며 다음 선물들을 배달하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선물 나눠주기 행사가 한 시간이구나’ 

  몇 명의 아이들은 내게 날아가는 루돌프를 보고 싶다며 옥상에 가자고 내 손을 끌어당겼다. 선생님은 옥상에 가는 건 위험하다고 아이들을 극구 뜯어말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나이 때 그 말을 믿는 게 당연한 건데, 나는 산타클로스의 비밀을 너무 빨리 알았나 보다. 산타클로스의 정체는 엄마 아빠였으니까.

직장 때문에 맞벌이하는 엄마 아빠는 늘 바빴다. 무엇보다 엄마 아빠가 아니면 내가 말했던 똘똘이 포대기를 알 수 없었다. 






  최근 고민을 들어주는 예능프로에서 중학생이 되는 아들의 학부모님이 등장했다. 산타를 아직도 믿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내용이었다. 너무 천진난만하고 순진하게 생긴 아이 었다. 심지어 새 이빨을 주는 이빨요정도 있다고 믿는 아이였다. 엄마의 고민은 아이가 이 모든 걸 믿는데 혹시라도 동급생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까 봐 걱정이란다. 엄마는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말해주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순수한 아이의 마음이 하얀 종잇장처럼 나폴 거리는 것 같았다. 엠씨중 한 명이 그동안 산타의 존재를 깨우칠 기회가 있었는데 순수한 동심을 지켜주려다 보니 어머님께서 기회를 차단한 건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사실 어린 나도 산타의 존재를 믿었다.

그러다 엄마 아빠의 대화를 몰래 엿듣게 됐고, 충격보다는 깨달음을 얻었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나를 지켜주려는 엄마 아빠의 진심을 깨트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모른 척을 했었다. 그리고 12월만 되면 일부러 갖고 싶은 걸 읊조렸다. 이런 걸 주객전도라고 해야 할까. 하얀 거짓말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일부러 적당한 가격에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으로 갖고 싶은 물건을 둘러댔다. 

  아빠는 아직도 깜짝깜짝 놀래며 묻는다.

  “그게 엄마 아빠 인지 어떻게 알았는데?”

  나는 대답한다.

  “귀가 밝아서 엄마 아빠가 하는 말 다 들었거든 큭큭”

  산타클로스는 없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생신날, 유치원에서 기획하는 선물 주는 날, 아이가 좋아하는 선물을 전달하는 날. 티브이에 나온 엠씨의 말 대로 아이들이 느끼는 요정, 천사, 괴물들의 존재는 스스로 알게 되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하나씩 다시 성장하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선물 포장지를 뜯으며 엄마 아빠가 얼마나 고생해서 이걸 준비했을까를 생각했다. 어린 나의 마음속에서 뭉근한 것이 올라왔다. 방금 쪄낸 고구마 위로 솟아오르는 수증기처럼. 이 정도면 애어른 아닌가?


  나도 부모가 되면 그렇게 될까. 가끔 생각한다. 나를 닮아 예민하고 귀가 밝을 수 있으니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더 철저하게 몰래 선물을 준비해야지. 그래서 아이의 동심을 나이에 맞게 지켜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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