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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03. 2022

네가 괜찮지 않았으면 좋겠어

퇴사를 결정한 후 내게 해준 다정한 말 

퇴사 결정을 한 후 두번의 면담이 더 있었다. 팀장과의 간단한 면담이 끝난 후 이사님과의 면담이 남았다. 이사님은 조용한 카페로 나를 데리고가 나즈막한 목소리로 무엇때문에 그만두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 했다. 더불어 좋지 않은 집안 사정과 정리해야될 문제들에 대해서도 대략적으로 설명을 했다. 동정 받는게 싫어 집안싸움이나 유산 엄마, 할머니의 부고에 대해서는 웬만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회사니까 조용히 퇴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고. 그런데 이사님은 우리집 사정을 마치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이 정곡을 찌르며 말을 했다.

"왜 어머니가 아프신거야?" 

어머니 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눈빛이 변해 있었고 이사님의 눈가도 촉촉히 젖어 있었다. 나는 태연한척 하려다가 말꼬리를 흐리며 더듬었다.

"어어엄마...가 아픈게 아니라요."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그럼 뭐냐고 이야기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울음을 찾느라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엄마는 돌아가셨어요"

얼마간의 침묵이 흘렀다.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애써 울음을 꺼이꺼이 다시 되새김질 하듯이 뒤로 넘기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렇게 몇초간의 정적이 흘렀고, 이사님은 모든 걸 이해할 수 있겠다는 듯이 내 말에 수긍했다. 그리고 자신도 가족을 잃은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공감해주었다. 

그 슬픔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라고,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이사님의 목소리가 진지했다.

"자신도 자신의 아이를 잃어봐서 잘 알아요." 그녀의 담담한 말투는 나를 놀라게 했다. 그녀는 내게 힘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금 괜찮은척 하는 거 안다고 그러느라 얼마나 힘들었냐는 나를 너무 알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당장이라도 이사님께 어떻게 알았냐며 물으며 엉엉 울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나는 남을 하도 의식하기에 그저 터지는 울음을 눌러담고 있었다. (그런데도 눈물은 조금 나오더라) 


"라일락씨가 괜찮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힘들 때 소리도 지르고, 아빠랑도 싸우고, 그 짐을 다 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나중에 힘들기 마련이거든"


괜찮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말. 한 달여 동안 쉬면서 힐링도 하고, 잠도 푹 자고 하고 싶은거 다 하면서 그랬으면 좋겠다고, 단 내가 다 해야 된다는 생각, 가족을 부양하고, 중심을 잘 잡아야 되고, 일어서야 되고 하는 착한 생각들은 잠시 뒤로 미뤄 놓았으면 한다고, 그래서 괜찮지 않았도 되니까 괜찮을 필요 없으니까. 내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건냈다. 왜 그 말이 나는 힘내라는 위로보다 따뜻했을까. 이사님과 나는 밥을 몇번 먹은게 다인데 원래 친하지 않은 상태일수록 제 삼자의 입장에서 들어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말과 함께. 내게 안타깝고, 빨리 알아채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며 긴 카페 티타임은 끝이 났다. 

그 어느 말 보다 위로가 되는 말. 지금 괜찮은척 하는 나에게 정말 어른이 해주는 말 같았다. 괜찮지 않아도 된다는 거.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또한 이 글을 통해 말해 주고 싶다. 세상에 괜찮은 건 없으니까. 때론 비뚤어 져도 흔들려도 되니까 괜찮지 않아보기를. 착한 가장, 착한 엄마가 되기 보다 당신의 힘든걸 괜찮지 않게 표현해보기를. 이 글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내가 위로 받았던 그 마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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