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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를 나는 새 Aug 16. 2016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한 마리의 강아지

사람도 복닥복닥, 동물도 복닥복닥한 LA의 어떤 집

그러니까 그 집에서 지냈던 건 한 일주일 정도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서쪽, 소박한 주택가에 있는 나즈막한 분홍색 이층집. 그러고보니 이 집을 다녀온지 딱 일주일, 휴가가 끝난 지도 딱 일주일이다.


나는 호텔도 민박도 아닌, 그네들의 표현에 의하면 "Airbnb-ing"을 하는 중이었다. 깔끔하기만 한 호텔에서 지내는 건 출장에서 자주하는 일이고, 나는 그저 보통의 미국인들과, 보통의 집에서, 보통의 생활을 하다 오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 집을 선택하기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Hollywood & Highland 주변으로 교통이 편리한 곳에 일정과 예산이 맞는 곳, 인테리어가 마음에 드는 곳은 이곳 뿐이었으니까. 게다 집주인으로 등장하는 아가씨의 사진 속 인상이 퍽 괜찮아보였던 것이다.



해질 무렵 집에 도착하니 짧은 머리를 예쁘게 묶은 아가씨가 방을 안내해준다. 캘리포니아산 아몬드처럼 건강하게 그을인 갈색 피부에 동그랗고 검은 눈을 하고 있었다. 재잘재잘 귀엽게 떠드는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박사과정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녀의 하우스메이트 나머지 두 명은 키가 크고 늘씬한 백인 여자 사람들이었는데, 그녀들도 모두 철학 박사 과정 중이었다. 가끔 집 관련한 것을 물어보느라 급히 문자를 보내도 답이 오지 않는다면, 요근처 대학교에서 철학 강의를 하고 있을 때란다.


그녀들이 나에게 내어준 방은 창문 두 개에 문에까지 창문이 나 있는, 정말로 햇빛이 아주 잘드는 환한 방이었다. 방 한 켠엔 책꽂이가 있었는데, 무척 세련되게 꽂혀있어 마치 아트북 같지만 실은 모두 철학책들이다. 칸트, 헤겔, 니체. 니체, 니체, 니체....아! 내가 지금 "철학의 집"에 와 있는 것인가. 그런데 이 집에 많이 살고 있는 것들이 비단 철학책 뿐만은 아니었다.



- 어머나, 헤헤, 안녕~!


방을 돌아본 뒤 돌아나가려는데 마당으로 난 문으로 커다란 개 한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그렇잖아도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터인지라 대부분의 애견인들이 그렇듯, 난 개만 보면 어쩔 줄을 모른다.  이 강아지에게도 급히 관심이 간다.


- 이 개는 집 안에는 안 들어오는거야?

- 아니. 들어와. 내가 데려올게. 무이~~(Moi), 무이~~~ 이리와~~


이윽고 양치기같은 개 한마리가 대문 안으로 쿵쿵 들어선다. 털이 하얗다 말고, 곱슬하다 말았다. 덩치는 산만한데 축처진 눈과 귀가 무척 순하다. 짤막한 꼬리가 바쁘게 흔들린다. 도대체 이런 개를 어디서 봤더라?


- 얘 종이 뭐야?

- 응... 래브라도랑 푸들 믹스.


아아, 그래서 이렇게 특이하게 생겼구나 네가. 개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슥 다가와 몸을 기댄다. 참 예쁘다. 우리 나라는 혼혈을 잡종개라고 낮추어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서구권에서는 혼혈 강아지가 튼튼하고 특이하다고 더 좋아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하긴, 이런 강아지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 얘는 참 크네. 나도 개 키우는데 걘 자그만해. 말티즈거든.

- 아, 나도 예전에 조그만한 개 키웠었어. 그런데 하늘나라 갔어.


그녀는 휴대폰을 건네어, 이제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옛 꼬맹이 친구의 사진을 보여준다. 그 아이도 참 예뻤겠구나. 이제는 이 세상에 없어진 어떤 생명체와 그가 남기고갔을 추억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슬퍼졌다.


나는 무이의 진귀한 외모, 그리고  항상 입이 귀에 걸려 있는 미소를 꼭 사진에 담고 싶었다. 다른 집주인 하나에게, 무이의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 그럼, 당연하지.


그녀는 무이가 카메라를 볼 수 있도록, 손으로 소리를 내며 온갖 것으로 무이의 시선을 끌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사진이 바로 저 위의 사진이다.)


이렇게 안면을 트게 된 무이. 내가 밖에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자기 주인도 아닌데 흥분하며 뛰어와선 정신없이 꼬리를 흔든다. 그럼 나는 무이의 애매하게 곱슬하고 하얀 털을 힘차게 문질러준다. 이국 땅에 낯선 동물에게 이렇게 환대를 받다니.


그런데 뒷마당 뜰에도 무언가 조그마한 털뭉치가 돌아다니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되었다. 이건 또 뭘까?



어머, 넌 뭐니? 현관문 앞에 배를 깔고 얌전히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 녀석. 손바닥보다 조금 클까말까한 새끼 고양이다. 윗집 사는 사람이 내려와 계단 밑에 놓인 밥그릇에 먹을 것을 부어주자, 녀석이 냉큼 다가와 맛있게 먹는다.


- 너네가 키우는 고양이야?

- 아니, 저거 홈리스인데 이 집에 들어와서 살아. 윗집 사람이 보살피고, 얘네 엄마는 안보여.

  그런데 쟤 형제들이 있대. 나는 못봤는데, 혹시 너 봤어?

- 아니 못봤는데. 형제도 있어?

  

마침 이 새끼 고양이의 형제들을 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그 다음날, 햇빛이 쨍쨍나고 무더운 아침, 왠 새끼 고양이들이 우르르 나타나 서로 장난치며 노는 것이었다. 것도 바로 내 눈 앞에서.



자세히 보면 한 마리가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월리를 찾아라" 같기도 하지만.


고양이들은 벤치나 계단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뛰어올랐다 덮쳤다 서로 뒹굴며 논다. 모두 삼형제네. 너무 귀여워 다가가 쓰다듬어주고 싶었는데, 내가 문을 열자 일제히 흩어져 도망간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꼭 나를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었나보다. 얘들도 내가 꽤 궁금한지, 틈날때마다 문가에 다가와 나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인가는 잿빛의 녀석 하나가 창문 위로 뛰어올라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한참동안이나 쳐다보더니, 야옹야옹 거렸다. 이들은 언제든 틈만나면, 마당쪽으로 문이 난 내 방 현관 앞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곤했다. 가끔 내가 뭘하나도 알아보고.


이렇게 밤에 문 앞에서 야옹거리면 꽤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그리고 아침이면, 볕바른 현관문 앞에서 무엇인가를 감상하고 있다 나와 딱 마주치기 일쑤였다.



어떤 땐 볕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아기 고양이가 자고 있는 것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강아지를 키우고있으므로 개들의 습성이나 버릇들은 많이 보았지만, 고양이는 여전히 아무리 봐도 참 신기하다. 그들은 심지어 새끼들마저도 퍽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아유, 예뻐라.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다.


그런데 내가 뭐하는 지 밤마다 궁금해하는 존재가 또 있었다. 어느날 새벽, 방문 손잡이가 자꾸 딸깍 거리는 것이었다. 이 밤에 대체 누가 들어오려고 하나, 여자들만 사는 집인데 싶어 문을 살며시 열어보았다. 내 눈 높이 위로 나와 마주치는 시선이 없다. 뭐지?


- 야옹, 야옹


바닥쪽을 내려다보니, 잘 생기고 통통한, 갈색 줄무늬 고양이가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그러더니 벌어진 문 틈 사이로 슬그머니 들어간다. 우아한 캣워크로. 그동안 네가 이 방에서 뭐하는지 참 궁금했어. 이제 방 좀 보여줄 때도 되지 않았니, 하는 것처럼.


- 아, 안돼 안돼. 이리 나와.


나는 고양이를 달래어 밖으로 보내고 다시 문을 닫았다. 이 아이는 내가 그리 좋은 건지 아님 그 방이 그리 좋은 건지, 밤이면 밤마다 문앞에 와서 방문을 딸깍 거렸다. 고양이의 목엔 방울이 하나 달려있어서, 저 딴엔 조용히 움직이려해도 딸랑딸랑 소리가 나게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소리가 귀엽기도, 웃기기도 하여, 자면서 큭큭 웃곤했다.


- 너네 집에 고양이 또 있더라. 밤에 문을 딸깍 거리길래 나는 사람인 줄 알았잖아.

- 아, 그래? 봤구나. 깨우게 해서 미안해. 얘는 다른 애가 데려온 애야. 문은 절대 열어주지 마. 어떻게 그러는진 모르겠지만, 어쩔땐 닫아놓은 찬장 속에도 들어가 있다니까.


가끔 잠을 깬 적은 있지만 그래도 나는 이 아이가 있어서 무척 재미있었다. 가끔 부엌으로 가는 길목에서 아크로바틱한 요염한 자세로 누워있는 것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이 집엔 고양이가 총 네 마리 사는 구나. 여기에 강아지까지 모두 다섯 마리 되시겠다. 나는 털이 달린 동물들을 퍽 좋아해서 이 집이 점점 정겨워졌다. 먼 곳에서 놀러온 사람에게 보드라운 털을 부비며 애정표시를 하는 이것들에게 무척이나 정이 갔던 것이다.




밖에 나갈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나라에선 마트나 백화점에 개를 데려올 수 없지만, 여기선 그런 것을 심심찮게 보게된다. 미국에서 파견근무를 한 적이 있는데, 심지어 사무실에 개를 데려오는 것도 아주 흔한 일이다.


동물들과 일상의 반경을 공유하고 그들만이 줄 수 있는 정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은 참 즐거운 일 같다. 말대신 몸짓으로, 표정으로, 촉감으로 표현하는 그들과 대화하기 위해 나의 오감을 열어 놓게도 된다.


한국에서도 뛰노는 고양이와 강아지들을 앞마당에 자유롭게 풀어두고, 아무렇지 않게 이들을 가족처럼 소개하고, 함께 장을 보거나 식당에 가는 것이 편안하고 흔한 일상이 될 수 있을까. 아직은 약간 거리가 있는 일이라, 이곳에서의 이런 경험들이 조금 더 특별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 집 주인과 이집 식솔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놓아두었다. 홀푸드 마켓에서 산 유기농 강아지 연어 저키와 고양이 간식 캔이다. 무이가 자기 먹을 것인 줄 아는 건지 흥분해서 뛰어다닌다. 먹을 것 앞에서도 시크한 건 고양이들이다. 주인은 연신 고맙다며 함박 웃음을 짓는다.


고맙기는. 오히려 내가 이 집에서 너무 즐거웠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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