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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로니 따블, 후추 톡톡

신홀리페페 이야기

by 정벼리

피자를 주문할 때면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본디 피자란 음식이 1인 1판을 완수하기 어려운 음식인 탓이요, 여럿이 나눠 먹으려니 각자의 선호가 다른 탓이요, 도우 위에 올라간 재료에 따라 피자 맛이 천차만별인 탓이다. 딸아이는 큼지막한 새우가 올라간 시푸드 피자를 선호하고, 남편은 고기와 채소가 듬뿍 올라간 콤비네이션 피자를 선호한다. 나의 원픽은 언제나 더블 페퍼로니 피자! 매콤한 페퍼로니 소시지가 퐁신한 모짜렐라 치즈와 싸악 버무려지고, 그 위에 통후추를 갈아 톡톡 뿌리면 깔끔한 향미까지 추가되어 그 맛이 아주 일품이다. 한입 야무지게 베어 먹고, 헤페바이스 맥주로 입가심을 하면 그야말로 취향 저격.


식물은 어디로 가고 웬 피자 이야기냐고? 오늘의 주인공을 어떻게 소개할지 아이디어를 구상하며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종래에는 페퍼로니 피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신홀리페페. 키우기 쉬운 관엽식물로 널리 알려지고, 흔하게 유통되는 아이다. 이름에 신(新)이 붙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이 아이는 자생종이 아니라 서로 다른 페페로미아 종을 교배하여 만들어낸 하이브리드 품종이다. 페페로미아 데페아나와 페페로니아 쿼드리폴리아를 섞어 만든 신홀리페페는 잎이 도톰하고, 줄기 마디마다 동글동글한 잎이 짝지어 귀엽게 돋아난다. 줄기가 아래로 늘어지면서 자라는 덩굴성 특징이 있어 높은 선반이나 행잉 바구니에 두고 키우면 풍성하게 늘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식집사일지를 꾸준히 읽어주신 독자라면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잎이 통통한 식물은 수분과 양분을 저장하는 능력이 뛰어나, 물 주기의 영향을 덜 받는다. 다시 말해, 게으른 식집사도 키우기 쉽다. 그리고 늘어지는 습성은 수형을 잡기 위해 크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니, 이 또한 관리가 용이하다는 뜻이다.


하긴 신품종을 개발하는 전문가들이 괜히 신홀리페페를 만들어냈겠어. 바쁜 현대인들이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싱그러운 화초를 쉽게 길러낼 수 있도록 연구한 결과가 바로 이 신홀리페페다, 이 말씀이다. 게다가 페페로미아 종류는 독성이 없어서 반려동물이나 어린이가 있는 집에서도 기를 수 있는 안전한 식물이다.


빨간 버섯을 소듕하게 감추고 있는 신홀리페페


신홀리페페에 대한 골똘한 생각이 어쩌다 더블 페퍼로니 피자까지 흘러갔는지를 설명하자면, 대충 이러하다. 신홀리페페는 후추과(Piperaceae)에 속하는 식물이다. 먹지 못하는 관엽식물, 그것도 동글동글 귀여운 잎을 자랑하는 녀석이 알싸한 후추와 친척뻘이라니 정말 의외다.


어떻게든 신홀리페페와 후추의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우선 '귀여움'을 들 수 있겠다. 당신은 우리가 식탁에서 흔히 만나는 향신료 후추가 후추나무의 열매인 것을 알고 있는지. 후추열매는 페퍼콘(Peppercorn)이라고 불리는데, 작은 열매가 포도처럼 주렁주렁 달려있다. 검색해 보면, 아주 앙증맞은 페퍼콘 사진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귀여운 열매를 말린 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향신료 후추인데, 페퍼콘은 처음에는 녹색이었다가 점차 빨갛게 익어간다. 언제 수확해서 어떻게 가공했는지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향신료로 재탄생한다.


녹색 페퍼콘을 수확하여 데친 뒤 껍질채 말리면 우리가 흔히 쓰는 흑후추가 된다. 껍질이 검게 쪼그라들면서 페퍼린 성분이 강한 매운맛과 향을 낸다. 붉게 익은 페퍼콘을 물에 불려 과육을 제거하고, 씨앗만을 건조하면 백후추가 된다. 껍질을 제거했기 때문에 흑후추보다 매운맛이 약하고 부드럽다. 흑후추와 백후추 외에도 후추의 종류에는 녹후추와 적후추도 있단다. 녹색 페퍼콘을 말리지 않고 식초에 절이면 녹후추가 된다. 순한 맛과 톡 쏘는 향미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붉게 익은 페퍼콘을 껍질째 건조하면 적후추가 되는데,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맛이 난다고 한다. 이 두 가지는 먹어본 적이 없는데, 어떤 맛일지 아주 궁금하다.


다음으로 비슷한 점을 고르자면 역시 '이름'이 아닐지. 페페와 페퍼. 사실 페페로미아(Peperomia)라는 이름 자체도 그리스어로 '후추와 비슷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페페와 페퍼를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페퍼로니가 떠올랐다. 페퍼로니 소시지도 매콤한데, 혹시 후추를 뿌려 만들어 이름이 페퍼로니인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페퍼로니의 이름은 후추와는 상관이 없다. 페퍼로니는 살라미 소시지의 한 종류인데, 매콤한 향과 빨간 색깔을 내기 위해 피망(peperone)나 페페론치노(peperoncino)와 같은 고춧가루를 섞었기 때문에 페퍼로니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페퍼로니 소시지의 이름은 이탈리아어에 기반하고 있지만, 그 탄생지는 이탈리아가 아니다. 페퍼로니는 20세기 초 미국 뉴욕에서 이탈리아 이민자들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들은 고향의 매운 살라미를 만들고 싶었지만, 이탈리아에서 살라미를 만들 때 사용하던 고추 품종을 미국에서는 구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대신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피망과 페페론치노를 섞어 살라미를 만들었고, 그것이 곧 우리가 아는 페퍼로니의 원형이 된다. 그러니까 페퍼로니는 하이브리드 살라미다.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었던 이탈리아인들이 만들어낸 페퍼로니. 다시 생각의 흐름은 신홀리페페로 돌아온다. 신홀리페페의 영어 유통명은 페페로미아 호프(Peperomia Hope)이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하이브리드 페페로미아와 희망으로 가득 찬 이민자가 만들어낸 하이브리드 살라미. 신홀리페페와 페퍼로니가 이렇게도 연결된다고 하면 너무 억지인가.


어쨌든간에, 나는 방금 마음을 정했다. 귀여운 신홀리페페가 가을 햇살을 듬뿍 받는 동안, 나는 더블 페퍼로니 피자를 시켜 먹겠다고. 얇은 도우에 치즈와 페퍼로니가 쫙 깔리고, 그 위에 후추를 톡톡 뿌려 왕 베어 물고 말 테다. 페퍼로니의 톡 쏘는 매콤함과 모짜렐라의 녹진한 고소함이 어우러지고, 알싸한 후추 여운이 풍긴다면 그야말로 가을 하늘 아래 포동포동 맛 좋은 한 끼가 아니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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