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 이야기
누가 감히 반민초를 배척하는가. 소싯적 슈퍼에서 주머니 속 백 원짜리 탈탈 털어 민트향 껌을 소중하게 받아 들고 나와본 기억이 또렷한 세대치고 처음부터 아무런 거리낌 없이 민초를 꿀꺽 삼킨 자가 과연 존재할 수나 있단 말인가. 언젠가부터 민초파가 우위를 점령해 버린 시대이지만, 감히 솔직히 털어놔본다. 민초 맛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씹던 껌을 삼키는 느낌이다.
'이 맛은 싫어요'라는 말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만큼은 철든 이후로, 민초를 먹어야 할 상황에 처하면(?) 사회적 미소를 장착한 채 본래 소식하는 깍쟁이처럼 살짝만 베어 먹고 있다. 하지만 진실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굳이 민초를?! 하긴 우리 집에서도 남편이고 아이고, 민초라면 고체 액체를 가리지 않고 사랑해 마지않더라. 내 기준에는 또 하나의 괴식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민트 자체를 혐오하는 것은 아니다. 잘만 사용하면 세상 상콤한 것이 민트 아니겠어. 민트 잎 한두 개 살짝 띄운 물 한잔이면 머리까지 맑아진다. 잠자기 전에 치카치카 양치를 할 때에도 역시 민트향 치약이 딱이지. 또 껌 중에선 민트향 껌이 최고다. 일찍이 노래도 있지 않나. 쥬시후레시 후레시민트 스피아민트 오오… 아, 이건 cm송이었지.
내 말은 이 상쾌한 허브를 굳이 초코에 타서 먹냐 이 말이지.
우리나라에서 민트는 외래종으로, 독특하고 쓰임이 많은 허브류로 재배되고 있다. 하지만 민트가 흔한 나라에서는 작물로 분류되기보다는 정원을 잠식하는 무시무시한 잡초의 왕처럼 취급된다고 한다. 화분에서 피어나는 민트도 물꽂이 번식이 참 쉬운 편이다. 그런데 정원에서는 굳이 가지를 잘라 물에 담그는 수고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스스로 개체수를 마구 늘려나간다. 그 비밀은 바로 지하줄기에 있다.
민트의 줄기는 땅 속에서 옆으로 쭉쭉 뻗어나간다. 그리고 그 줄기에서 새로 뻗어나간 가지가 땅 위로 계속 새로운 민트 잎을 올려낸다. 그래서 서구 정원에서는 민트가 발견되면 즉시 제거작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이란다. 귀엽다고 내버려 두면 1~2년 안에 정원 전체를 뒤덮어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없을 정도로 통제불능의 상태가 된다고 하니, 정말 폭발적인 번식력이다. 게다가 민트는 습하고 그늘진 곳에서도 잘 자라고, 심지어 허브 치고는 추위에도 잘 적응하는 편이다.
최근에 민트 사총사를 들였다. 스피아민트, 페퍼민트, 오 데 코롱 민트, 애플민트까지. 애플민트는 다음에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스피아민트, 페퍼민트, 오 데 코롱 민트 삼총사만을 소개해볼까 한다.
셋 중 가장 역사가 깊은 아이는 스피아민트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부터 향료, 요리, 목욕 등에 사용되었던 민트의 원형이다. 스피아는 영어로 spear, 뾰쪽한 창을 의미하는데 잎 모양이 길고 뾰족한 톱니 모양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향은 부드럽고 달콤한 편이라, 샐러드나 아이스 티, 모히또 같은 칵테일을 만들 때 생잎 그대로 많이 쓰인다.
페퍼민트는 잎이 아주 진한 녹색을 띠고, 스피아 민트보다 넓적하고 둥근 편이다. 스피아민트와 워터민트가 자연적으로 교배되어 탄생한 품종이다. 페퍼민트의 멘톨 함량은 적게는 40%에서 많게는 90%까지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 덕택에 아주 강력하고 화한 청량감을 가진다. 페퍼민트의 이름도 마치 후추처럼 톡 쏘는 향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강한 향을 이용하여 치약, 껌, 사탕 등 청량감을 주는 제품에 널리 사용된다.
오 데 코롱 민트는 삼총사 중에 역사적으로는 가장 후발주자에 속한다. 페퍼민트의 변종 중 하나인데, 향의 계열이 다른 민트들과 살짝 구별된다. 시트러스나 라벤더 계열의 향기가 섞여 향수나 화장품처럼 복합적은 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름도 오 데 코롱 민트이다. 주로 식용보다는 향료로서 포푸리, 목욕제, 비누 등에 첨가되어 향을 내는 재료로 사용된다.
집에 텃밭용 네모난 대형 화분이 두어 개 놀고 있다. 지난봄, 아이가 제 아빠와 상추, 부추를 키우던 것이다. 한참 수확해 먹을 때에는 제가 키운 채소라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는데, 한 철 지나니 아이의 베란다 텃밭 사랑은 그만 시들해져 버렸다. 놀고 있는 화분에 민트나 심어볼까 한다. 민트는 추위에 강한 식물이라 노지 월동도 거뜬하니, 올 가을부터 잘 길들이면 겨우내 베란다에서 씩씩하게 살아남아 내년 봄쯤에는 꾸준히 향긋한 잎을 내주지 않을까 기대해 보면서.
혹시 아나, 내년 봄에는 집에서 키워낸 민트로 남편과 나는 모히또 한 잔, 아이는 홈메이드 민트초코 한 잔을 각자 손에 쥐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