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유럽의 ‘학교’에 가보고 싶었다. 요즘은 사범대학 교육과정에 ‘해외교육실습’ 과정도 생겼다고 하던데 내가 대학생일 때는 이런 과정이 없었고, 또 교사가 된 후 국내에서만 계속 근무하다 보니 외국의 교육 현장이 늘 궁금했다. 아쉬운 대로 책, 논문, 영상, 연수 등을 통해 호기심을 해소해왔지만 한계는 있었다. 그러던 중 2014년 싱가포르 교육탐방 때 방문했던 Nanyang Girls' High School에서의 시간은 내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막연히 유럽의 중등학교에 가보고 싶었지만, 우리의 방학 기간은 유럽도 방학이어서 학교 방문은 아쉽게도 불가능했다.(마음속으로 막연히 꿈꾸는 이 책의 후속편이 있다면, 그때는 더 잘 준비해 학교에 꼭 가보고 싶다.^^)
학교 탐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더 막막해졌다. ‘유럽 교육 탐방’이라는 주제만 세웠지, 세부 국가도 탐방 주제도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다. 어느 국가, 어느 기관의 누구한테 연락을 취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니 그보다 못한 상황이었다. 계란을 던질 목표물이 분명하지 않았고, 사실 계란을 던져야 할 외적인 이유도 없었다. 그래도 분명한 건 뭔가 해보고 싶었다. 내가 태어나서 이제껏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하는 ‘교육’과 ‘여행’ 이 두 가지를 접목해, 내 손으로 스스로 계획을 짜고 실행하고 마무리하는 그 귀한 배움길에 오르고 싶은 건 분명했다.
그런데 자유여행 계획을 한 번이라도 스스로 짜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여행 계획을 짤 때는 참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다. 항공, 숙박, 교통편, 예산, 관광명소 예약, 미술관(박물관) 및 공연 예약, 현지 투어, 보험 등 생각해야 할 것들이 정말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현지에 가서 실제로 부딪치면서 할 수 있는 것들도 많고 막상 가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또 여행의 묘미이지만, 그래도 떠나기 전 준비한 만큼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자유여행 계획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기관이나 단체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는 개인 자격의 유럽 교육 탐방이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피식) 무식해서 용감했다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아니, 그만큼 엉뚱하지만서도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우리와 같은 후속 도전을 꿈꿀 수도 있기에(코로나19의 종식 이후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관심 분야와 연결해 ‘나만의 여행’을 꿈꾸고 기획하고 떠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앞에서 간간이 언급했던 교육 탐방 실행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해보려 한다.
일단 우리는 학교 근무로 바쁜 일정 속에서도 틈틈이 온/오프라인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진짜 우리가 원하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자 노력했다. 일상에 치이다 보면 퇴근 후 지쳐 쓰러지기 일쑤인데, 우리의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을 짧게라도 가질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몸은 힘들지만 실은 꽤 설렜다. 이 과정에서 나는 대단한 작가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 본 ‘삶’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중심축에 내가 몸담고 있는 ‘교육’과 내가 좋아하는 ‘여행’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었다.
다음으로 정할 것은 이러한 바람을 실현할 수 있는 ‘여행 지역’이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고 또 교육이 어떤지 궁금했던 ‘유럽’으로 지역을 좁히는 것까지는 어려움이 없었는데, 유럽 내 세부 국가를 정하는 것은 참 어려웠다. 대략적으로 국가를 정해야 섭외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보고 싶은 나라는 많고 시간과 예산은 한정되어 있어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많은 자료 수집과 대화 끝에 우리의 교육적 관심사와 여행 취향을 고려하여 우리는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을 중심으로 일단 계획을 짜보기로 결정했다.
맨 처음으로 연락을 취해본 곳은 국내에 있는 각 나라의 ‘문화원’들이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지금 읽어봐도 참 막연한 문의였고, 그래서인지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 과정에서 원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국내에 주재하는 ‘주한00문화원’은 주로 한국에서 해당 외국어, 외국문화를 가르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사관’이나 ‘현지 기관’에 직접 연락을 취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도움을 받기에 더 적합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대사관’이라…….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2004년 스위스 여행 때 임시 여권 발급을 위해 ‘주 스위스 대한민국 대사관’을 찾은 적은 있었지만, 이때를 제외하고는 해외에서의 비상 상황을 대비해 연락처 정도를 적기 위해 홈페이지를 기웃거린 게 대사관과의 인연은 전부였다. 내 머릿속의 대사관은 나의 일상과는 굉장히 거리감이 있는 기관인데, 이런 공적 기관에 이런 문의를 드려도 되는 건가? 괜한 폐를 끼치는 건 아닌가? 마음이 무거워졌다. 문의를 드리기 전 대사관 홈페이지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내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대사관의 주요 업무에서 ‘문화, 학술 및 체육 교류 협력’, ‘언론인, 청소년, 문화계 인사의 인적교류 업무’ 등을 발견했다. 여전히 마음은 무거웠지만 그래도 우리 입장에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정중하게 문의는 드려볼 수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나는 정성껏 메일을 드렸다.(이 과정에서 당시 해외안전여행 경보 상황에 따라 프랑스는 후보 국가에서 제외했고, 우리의 이동 동선상 영국도 제외해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가 남은 상황이었다.)
감사하게도 세 곳 모두에서 답변이 왔다. ‘주독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는 ‘주독한국교육원’에 연락해보라고 추천을 해주셨고, ‘주스위스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는 스위스 교육 관련 각종 사이트를 추천해주셨다.(하도 많은 기관에 문의를 했었어서 어떻게 연락이 닿은 건지 지금도 정확히 모르겠는 스위스 취리히 교육부도 아마 대사관에서 알려주신 사이트를 통해 연결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주이탈리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는 ‘외교부 서유럽과’로 공문을 보내면 협조해주시겠다는 답변이 왔다. 대사관의 안내에 따라 ‘주독한국교육원’에 문의를 드렸고, 잠시 고민 끝에 이탈리아 대사관에 공문을 발송하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교감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교사들의 자발적인 교육적 노력을 매우 긍정적으로 격려해주시는 분이셨기에, 교감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공문 발송이 가능할 것도 같았지만 이렇게 되는 순간 왠지 스스로 도전하는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 현지의 한국문화원에 추가로 메일을 드리고 답을 기다렸다.
‘주독한국교육원’에서 답이 왔다. 우리의 메일이 너무 막연해 도움을 주시기가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더 이상의 의미 있는 다른 답변은 오지 않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대략적으로나마 여행 일정을 정해 항공, 숙박 등을 예약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상태로 위 세 나라를 염두에 둔 채 일단 항공과 숙박을 예약하기 시작했다. ‘로마 인, 베를린 아웃, 암스테르담 스탑오버’, ‘혹시나 인터뷰가 잡힐지 모르니 일정 조율을 위해 기간은 최대한 넉넉하게’, 그리고 평소 우리의 여행 버킷리스트를 담아 하나둘씩 예약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실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 우연히 눌러본 스팸메일함에서 난 약 2주 전쯤 도착한 메일 한 통을 발견했다. ‘주 독일 한국문화원’에서 온 메일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스팸메일함에 들어가 있었다. 그 메일을 열어보니 독일은 연방국가이고 각 주별로 교육제도가 상이하기 때문에 그중 일정한 기관이나 학교를 추천해주시기가 어렵다는 설명과 함께, 최근에 조사하신 각 주별 교육, 교과서 담당 기관 연락처를 공유해주셨다. 16개 주의 교육 관련 상세 정보가 정리되어 있는 정말 그야말로 보석 같은 자료였다. 이 자료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와 다르게 독일 교육은 각 주별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메일을 2주나 지나서 본 게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무언가 우리의 계획이 어쩌면 구체화 될 수도 있겠구나 희망을 엿본 것 같아 기운이 났다. 하지만 그사이 시간은 또 지나 있었고, 출발 약 한 달 전까지도 제대로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에는 저 16개 주 중 우리의 예상 동선에 있는 주의 담당자에게만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역시나 섭외는 쉽지 않았고, 이제 우리가 생각해도 일정을 잡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새삼 다시 돌아보니 출발 한 달 전까지도 섭외가 제대로 확정된 기관이 없었는데, 우리가 여섯 개의 기관의 교육 전문가들과 인터뷰하며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그저 ‘기적’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든다.) 더이상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16개 주 담당자 모두에게 영문으로 메일을 보내며(그래도 처음보다는 숱하게 반복되는 이 과정에서 점점 우리의 탐방 계획은 구체화 됐고, 현지 기관 섭외를 시작한 어느 순간부터 나의 영작 실력은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늘고 있었다. 한국에서 국어교사로 살다 보면 사실 전문적인 영어를 구사할 일이 거의 없는데, 이 교육 탐방을 계기로 태어나서 가장 영어로 의사소통을 많이 한 것 같다.), 혹시나 답이 온다면 독일 내 동선을 조정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기나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7월 5일, 그러니까 우리가 출발하기 딱 2주 전 슈투트가르트 ZSL(바덴-뷔르템베르크주 청소년, 문화, 체육부 산하 교육센터)의 중등학교 교원 양성 및 연수 담당자 ‘Anja’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렇게 ZSL은 우리의 인터뷰 확정 기관이 되었다.
(사실 이즈음 16개 주 교육 담당자에게 보냈던 메일 중 헤센(Hessen)주의 ‘헤센주 교사아카데미(Hessische Lehrkräfteakademie)’에서도 연락이 왔었다. 프랑크푸르트 본부에서의 만남을 제안하는 감사한 메일이었는데, 아쉽게도 일정 조율 과정에서 인터뷰가 성사되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에는 단 하나의 인터뷰 일정도 없었는데, 이제는 출장 스케줄을 짜듯이 일정을 조율해야 하다니……. 한 달 사이에 찾아온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변화였다. 역시 문은 계속 두드려야 열리는 법이다.)
한편, ‘주 독일 대한민국 대사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독일 내 공관으로 ‘주 독일 대사관’ 이외에도 ‘주 함부르크 총영사관’, ‘주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 ‘본 분관’이 있었다. 사실 부끄럽게도 이때까지 대사관과 영사관의 정확한 차이조차 모르고 있었지만, 무슨 용기에서인지 영사관에도 도움을 청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 연락 덕분에 우리는 정말 말로 다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하고 감동적이었던 함부르크의 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7월 초 함부르크 총영사관에서 메일 한 통이 들어왔다. 일단 우리의 독일 방문 날짜가 함부르크 여름 방학 기간이라서 학교 측을 방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는 내용(한 주만 더 체류할 수 있었으면 어쩌면 학교 방문이 가능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정말 아쉬웠다.)과 함께 함부르크 주 교육부 담당자를 만나 함부르크 교육정책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어떤지 제안하는 메일이었다. 다만, 이러한 면담 일정을 희망한다면 교육청에서 외교부에 면담 일정 주선 요청 공문을 보내주면 협조하기 더 수월할 것 같다는 내용이 덧붙어 있었다. 우리는 공문을 통한 섭외는 하지 않기로 정했었기에 아무래도 더 진행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지만, 인터뷰 섭외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와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주시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이 자체로 이미 감동이었다. 민간 차원의 방문이라 공문 발송은 어려울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메일을 드렸는데, 꼭 공문이 아니더라도 좀 더 명확한 영문 기획안이 있으면 보내달라는 답이 왔다. 이때쯤에는 스위스 취리히 교육부 섭외 과정에서 정리했던 영문 프로필과 기획안이 있었기에 이 내용을 잘 정리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메일을 드렸다. 그리고 함부르크 일정은 확정되지 않은 채 2019년 7월 19일 우리는 부푼 마음을 안고 인천 공항에서 로마로 출발했다.
함부르크 일정이 확정된 건 스위스 그린델발트에서 맞이한 8월 첫날이었다. 이번 여행은 그냥 여행이 아니라 ‘교육 탐방’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에, 공식 출장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틈틈이 계속 이메일로 다양한 상황을 점검했다. 그러던 중 드디어 7월 말에 함부르크에서 기쁜 소식이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니 일정상에 문제가 있었다. 제안해주신 8월 7일 전날 저녁 우리는 바이마르 도서관에서 인터뷰가 있어, 바이마르(Weimar)에서 함부르크(Hamburg)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제안 일시까지 함부르크 교육부에 도착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였다. 교육부가 휴가 기간임에도 어렵게 주선해주신 일정인데, 자칫하면 우리가 일정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너무나 죄송했다.
그런데 이후 주고받은 메일의 내용은 정말 놀라웠다. 영사관 측에서 오히려 우리의 일정을 세심하게 체크해주시며, 만약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면 함부르크역에 도착한 후 공관에서 차량 지원을 해주실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아울러 부총영사님께서 인터뷰 후 저녁식사에 우리를 초대하고 싶으시다는 따뜻한 제안도 함께 담겨 있었는데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통역 지원과 독일 내 타 도시에서 통역을 구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까지 살뜰히 해주시는 모습에 아직 함부르크에 도착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함부르크는 이미 사랑이었다. 이렇게 영사관의 따뜻한 도움으로 ‘함부르크 주 교육부’는 우리의 마지막 인터뷰 기관이 되었다.
본문에서 상세하게 언급하지 못했던 여행 준비 및 섭외 과정을 정리해보았다.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내내 느꼈던 거지만 이번 여행은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과정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