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 때마다 기회가 닿으면 비교적 출입이 자유로운 ‘대학교 캠퍼스’나 ‘도서관’에 종종 들르곤 했다. 대학교에서 자유로이 공부하고 대화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잠시나마 함께 그 밝고 건강한 에너지를 나누는 것이 좋았고, 도서관을 보면 그 도시의 인문학적 깊이가 느껴져 마치 도시의 영혼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 국어교사로서 15년 정도를 근무하며 ‘책’이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이 당장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의 도서관이나 독서교육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졌다. 『유럽 도서관에서 길을 묻다』, 『북미 학교도서관을 가다』와 같은 책에서 사서 선생님들의 해외 도서관 탐방을 엿보며 나도 언젠가는 도서관을 제대로 방문하는 기회를 가져보고 싶다고 막연히 꿈만 꿨었는데, 드디어 이번 여행에서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다.
ZSL 인터뷰로 예정에 없던 슈투트가르트에 가게 되면서 도시에 대한 사전 탐색 과정에서 흥미로운 정보를 접했다. 슈투트가르트 시립 도서관 외벽에 한글로 ‘도서관’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독일 도서관에 웬 한글? 더군다나 한국 도서관도 아니고 슈투트가르트 시립 도서관인데……. 그 배경이 궁금해졌다. 조금 더 검색을 해보니 슈투트가르트 시립 도서관을 지은 건축가가 한국인 이은영 씨였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공모 설계를 바탕으로 지어진 도서관의 모습은 사진만으로도 정말 가보고 싶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 홈페이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다 보니 시립 도서관에서 아동,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섭외 시도를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도서관이니까 일단 인터뷰 성사가 안 되어도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이메일을 보냈고, 2주 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을 때 도서관에서 우리의 방문을 환영하는 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터뷰 섭외 과정에서 비교적 간단한 절차로 우리의 방문을 기쁘게 환영해준 기관이 두 도서관이었다. 아마도 도서관은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열린 공간이어서 좀 더 제약 없이 우리의 요청을 받아주실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수박 겉핥기식이 아니라 제대로 도서관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도서관 관계자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한가득 안고, 통역사님과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한 후 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는 정말 건물 외벽에 한글로 ‘도서관’이라고 쓰여 있는지 사방을 돌며 확인을 했다. 고개를 들어 건물 꼭대기를 보니 도서관의 건물 사면에 각각 독일어, 아랍어, 영어, 그리고 한국어로 ‘도서관’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독일의 건물에서 한글로 적힌 ‘도서관’이라는 글자를 만날 줄이야……. 아침까지만 해도 낯설었던 슈투트가르트였는데 한순간에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기분 좋은 친근함과 설렘을 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우리의 인터뷰 약속에 대해 설명하고 1층에서 Karin. Roesler(이하 카린)를 기다렸다. 조금 있으니 이제까지 인터뷰 대상자 중에 가장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뿍 지닌 도서관 사서 선생님 한 분이 내려오셨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 사서 선생님은 우리와 약속한 카린이 오기 전까지 우리에게 도서관을 안내해줄 Linda. Roller(이하 롤러)였다. 롤러는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사서여서인지 어조와 손짓 모두에서 마치 아이들에게 도서관을 안내하는 것처럼 친절함과 상냥함이 느껴졌다. 나는 독일어를 전혀 모르지만 롤러의 설명은 말투와 표정으로 왠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신기한 착각마저 들었다.
먼저 도서관의 정중앙 지점에 서서 건물의 구조에 대한 안내를 들었다. 시립 도서관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정사각형 모양이었는데, 그 정사각형의 1층 중앙에는 바닥에서 귀엽게 솟아오르는 분수가 있었다. 이 물은 ‘지식의 원천’을 상징한다는 설명을 들으며 도서관의 본질에 잘 어울리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도서관은 동서남북에 출구가 다 있는 열린 공간으로 설계가 되어 있다고 했다. 뒤에 카린에게서 화려한 곳이 많은 이 도시에서 도서관은 ‘사람이 느려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고, ‘자기 자신에게 더 집중하면서 천천히 자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건축가의 철학이 잘 구현되었다는 설명을 들으며, 새삼 공간과 그 속에 담긴 철학의 중요성에 다시금 공감했다. 스위스 취리히 교육부에서도 공간이 주는 감동이 있었는데, 이번 여행을 하며 ‘그동안 나는 외형에 참 무심했구나.’ 여러모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평소 사물이든 사람이든 겉으로 보이는 외면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외형이나 형식보다 그 속에 담긴 본질과 내면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본질을 담는 그릇인 외형이 그 근원적 가치를 잘 드러내 주는 모습일 때, 그래서 외형과 본질이 제대로 조화를 이룰 때 뿜어내는 놀라운 시너지를 곳곳에서 느꼈다. 일상에서도 수업에서도 내가 전하려는 진정성을 어떤 그릇, 어떤 형식, 어떤 모습으로 담아야 그 가치를 더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지 앞으로 천천히 고민해봐야겠다는 삶의 새로운 화두가 생겼다.
1층부터 또 하나 계속 눈에 들어왔던 것은 천장에 달린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책 열차’였다. 각 층으로 책을 분류해 올려주는 기계라고 하는데, 도서관 입장에서는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이면서 아이들에게는 장난감 같은 느낌으로 도서관에 대한 흥미를 높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롤러가 담당하는 아동용 서가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숨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성향을 고려해 만든 네모난 방들이나 아이들이 컴퓨터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컴퓨터 위치를 조정해놓은 것을 보며 아이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3층부터는 주제별로 서가가 구성되어 있는데, 청소년 도서 서가가 별도의 층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층마다 마련되어 있는 것도 독특했다. 청소년은 어른과 아동의 중간적인 성격의 시기로, 자신의 연령에 맞는 책을 읽으며 눈을 돌려 자연스럽게 어른들이 읽는 책도 접할 수 있도록 매 층에 주제마다 청소년을 위한 서가가 있다는 설명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는 장소를 옮겨 테이블에 둘러앉아 도서관 운영 및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일단 우리가 방문한 이곳이 슈투트가르트 시립 도서관의 본관이었고, 슈투트가르트에는 18개의 작은 도서관과 2개의 ‘버스 도서관’이 있다고 했다. 도서관과 멀리 떨어진 지역을 위해 버스 도서관이 있는 것은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교육은 일단 어떤 방식으로든 ‘책’을 가까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동식 도서관’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는데, 사람들이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도서관 운영이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롤러는 도서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해줬다. 이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치원 아이들이 책을 쓰면 이를 출판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2부를 만들어서 한 부는 개인이 가지고 한 부는 도서관에 비치를 하는데, 온라인에도 아이들이 만든 책을 볼 수 있도록 올려놓는다고 했다. 프로그램 운영 비용은 슈투트가르트시에서 지원을 해서 아이들은 책 출판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의 저자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니……. 분명 아이들의 인생에 귀한 자양분이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교사가 된 첫해인 2006년, 나는 1년 동안 작문 수업을 진행한 후 아이들이 썼던 글을 엮어 학급별로 교과 문집을 제작해 아이들에게 선물을 했었다. 당시 학년 말에 시간을 쪼개 학급별로 그 편집을 하느라 제법 힘이 들었고 그때는 지원받을 수 있는 마땅한 예산도 없어 사비로 출판을 했었는데, 자신들이 쓴 글이 들어가 있는 그 문집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게 품에 안고 감사 인사를 전하는 아이들을 보며 한순간에 노고가 씻겨 내려갔던 추억이 있다. 자신의 글이 하나 들어가 있는 교과 문집만으로도 저렇게 좋아했었는데, 하물며 ‘나의 책’이라니……. 아이들이 질문을 하지 않는 한 특별히 지도를 하지 않고,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책을 만들 수 있도록 한다는 설명을 들으며 참 멋진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은 우리나라도 교육청이나 도서관 등에서 다양한 독서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학생들이 접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들이 정말 많다. 학교에 가면 이런 것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학생들도 좋은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도록 수업과 교육청(또는 학교 밖 기관)의 지원 사업들을 어떻게 엮을지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한편, 어렸을 때부터 ‘정보 검색 교육’에 힘쓰는 것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요즈음과 같이 다양한 매체가 발달해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는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한데, 아이들과 현장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의외로 이런 부분에 취약한 청소년들이 많다. 우리 세대보다 그들이 미디어, 인터넷에 익숙한 것은 분명 맞지만 본인이 즐겨하는 기능에만 익숙하다 보니 막상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찾아 어떻게 글에 활용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것이다. 이 도서관에서는 아이들의 연령에 따라 그 나이대에 맞는 정보 검색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이가 어릴 때는 웹사이트에 친숙해지는 것에서 시작해 채팅, 검색, 이메일, 광고, 인터넷 보안 등 다양한 것들을 교육하며 ‘인터넷 면허증’을 발급한다고 했다. 데이터 고속도로에서의 안전을 위해 가상 세계의 규칙과 위험에 대해 배운다는 그들의 창의적인 발상이 돋보이는 제도였다.
우리는 학교에서도 이러한 교육이 이루어질 텐데, 도서관에서 별도로 정보 검색 교육을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롤러는 물론 학교에서도 배울 수 있지만 도서관에서는 개인이 원하는 만큼 더 배울 수 있고, 학교는 의무지만 도서관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 학생들이 좋아한다는 답변을 줬다. 도서관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들의 핵심은 ‘공부가 아니라 놀이처럼!’이었다. 도서관에서 학교와 연합하여 개발한 ‘도서관을 구해라’ 앱게임도 아이들에게 도서관과 친숙해지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고, 벽에다 애니메이션을 쏘면서 책대화를 나누는 ‘그림책쇼’도 아동의 흥미를 유발하기에 적합해 보였다. 교육을 하는 데 있어 흥미만 따라가다가는 길을 잃을 수 있지만, 교육의 시작점에서 재미와 흥미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교육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놀이식 교육을 고민하는 사서 선생님들의 열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롤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원래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을 잡았던 카린 선생님이 오셨다. 90세의 아버지를 모셔다드리고 오느라 조금 늦었다며 미안해하시는 카린 선생님께 우리는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카린 선생님은 25년 차의 연륜 있는 사서로, 이 도서관에서 아동, 청소년 파트 책임자 역할을 맡고 계신다고 했다. 어떤 직업이든 한 직종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온 사람들에게는 전문가의 숨결이 느껴진다. 이런 어른과의 대화에서는 우리가 종종 생각지 못했던 지혜를 얻을 수 있는데, 카린과의 후반부 인터뷰도 만남부터 기대가 됐다.
롤러와 함께 나누던 대화를 마치고 카린은 우리가 아직 둘러보지 못했던 3층 이상의 도서관 건물을 안내해주신다고 했다. 계단을 오르니 드디어 사진으로만 봤던 도서관의 아름다운 구조가 한눈에 들어왔다. 전반적으로 하얀 톤의 깔끔한 분위기에 책들이 잘 정리되어 있는 모습은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와! 이런 도서관이면 아이들이 저절로 와서 책을 읽을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장서의 규모도 상당했다. 웬만한 대학도서관 규모를 능가하는 듯했다. 5층 세계 섹션에서는 슈투트가르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언어로 된 다양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고(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책들도 있다고 하셨다.), 독일어로 hörbücher라고 불리는 오디오북도 독일에서는 전문 성우가 있을 정도로 일반적이라는 말을 들으며 재미있게 구경을 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공간은 옥상 테라스에 올라가기 전 마주한 8층의 ‘예술 섹션’이었다. 1,100명이 넘는 현대 예술가들의 그림 진본이 모여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이 그림은 대여가 가능하다고 했다. 도서관에서 그림을 대여한다는 것이 정말 참신했다. 2,500점이 넘는 진본을 구입하는 비용은 시에서 별도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으며, 슈투트가르트시의 인문학적 색깔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이 공간을 보고 테라스로 올라가 슈투트가르트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보니 뭔가 더 도시가 기품 있게 느껴졌다.(한국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전라남도 순천시립삼산도서관에서도 지역 예술인들의 작품을 수집하여 2019년 10월부터 미술품 대출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좀 더 활성화되면 좋을 것 같다.)
다시 회의실로 내려와 우리의 주된 관심사였던 학교도서관과 지역 도서관의 연계에 대한 이야기를 더 깊이 있게 나눴다. 이 과정에서 카린은 독일의 학교도서관은 장서가 적거나 잘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경우들이 제법 있다고 했다. 공공도서관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그런 걸까? 원인을 여쭈어봤다. 카린은 독일에는 도서관에 대한 법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은데, 그렇다 보니 학교를 관할하는 주정부와 도서관을 관할하는 시가 도서관 설립에 있어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카린 생각에는 도서관에 대한 좀 더 강력한 법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며, 이에 대한 모범적 사례로 북유럽을 추천해주셨다. 그리고 현재 독일에서도 학교도서관 추진 모임과 같은 움직임이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덧붙이셨다.
한편 다양한 주체가 협업하여 좋은 성과를 거둔 흥미로운 프로젝트도 소개해주셨다. 15년 전에 ‘도서관’과 ‘슈투트가르트시의 아이를 담당하는 부서’와 ‘학교를 관리하는 부서’가 서로 협력해서 아이 3~4명당 어른 1명이 책을 읽어주는 소규모 독서 클럽이 만들어졌는데, 550명의 어른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하여 지금까지도 이 프로젝트는 잘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도서관과 주정부와 시와 시민들이 힘을 합쳐 아이들의 교육에 기여한 좋은 사례였다.
카린과 인터뷰를 하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까지는 교육계의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중앙정부, 시, 법조계 등 참 많은 분야의 다양한 주체들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해야 함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도 경력이 많지는 않지만 신규 교사 때에는 정말 내 수업, 우리 반만 보였다면, 15년 차인 지금은 예산이나 정책까지 교육에 얽힌 좀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것 같다. 아직도 모르는 게 많고 배워야 할 것들이 많지만 조금 더 넓은 시야에서 학교를 바라보며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교육적 실천들을 해보리라 다짐해본다. 어느 나라든 잘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도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솔직하게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눠주신 덕분에 인터뷰가 아니었다면 잘 몰랐을 독일 도서관의 속살까지 엿볼 수 있어 더욱 감사한 시간이었다.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역시 핵심어 한 줄 정의였다. 이번에 키워드로 여쭤본 것은 기관의 성격에 맞게 ‘도서관’과 ‘책’이었다. 둘 중 편한 단어로 부탁을 드렸는데, 카린은 두 단어 다 이렇게 멋진 정의를 해주셨다.
‘도서관은 교육의 보편성(Bildungsgerechtigkeit)에 대한 보증이다.’
‘책은 삶의 어떤 단계에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값진 보물이다.’
(독일어 ‘Bildungsgerechtigkeit’은 ‘교육형평성’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여기에서는 대화 맥락에 맞게 통역사님이 해석해주신 ‘교육보편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학업 중단 학생들을 비롯해서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도서관이 교육의 보증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게 참 든든하게 느껴졌다. 또한 책에 대한 표현에서 ‘삶의 어떤 단계에서도 없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인터뷰 도중 카린에게 ‘전자책’에 대한 생각을 여쭤봤었다. 전자책에 대한 반응도 제법 좋지만 종이책은 계속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중요한 것은 전자책이냐 종이책이냐와 같은 책의 형태가 아니라 그 속에서 ‘끌어내는 의미’라고 하셨다. 이렇게 책에서 각자 의미를 끌어내는 일은 매우 중요한데, 우리는 바쁜 일상에 치이며 점점 그 일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새삼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양식’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았을 때 기본적 의미는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사람의 먹을거리’이다. 그렇다. 책은 읽으면 좋지만 안 읽어도 큰 문제는 없는 보너스가 아니라, 사람다운 삶을 위해 일생 동안 반드시 필요한 귀한 양식인 것이다. 마치 우리가 매일 밥을 먹는 것처럼.
전문가와 인터뷰를 하고 보니 진부한 표현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 마음의 울림을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잘 전달해야지! 아울러 카린은 역으로 우리에게 ‘도서관’과 ‘책’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인터뷰에서 늘 질문을 하기만 했었지, 질문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의 핵심어 한 줄 정의는 이 책의 마지막에서 공개하려고 한다.^^
본문에는 미처 싣지 못했는데, 25년 차 베테랑 사서인 카린 선생님께 어떤 성향의 학생들이 사서가 되면 좋을지 질문을 드렸었다. 카린 선생님은
- 특정 분야를 파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모든 것에 흥미가 있으며,
- 소통과 상호작용이 중요하므로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고, 유연한
학생들에게 이 직업을 추천한다고 하셨다. 진로탐색을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작은 팁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