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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Oct 22. 2021

다회茶會

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다회


뉴스는 평소 헤드라인 기사만 보는 게 전부였는데, 이곳에 오고 난 후 그마저도 멀리하게 되었다. 방에 TV도 없거니와 가끔 밥집에서 틀어놓은 기사를 듣고 있노라면 맛을 음미하며 열심히 씹어 넘기려던 음식물이 목구멍에 턱 걸리는 이야기들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점점 둔감해지고 시간이, 계절이 어찌 흐르는지 모르고 살기 일쑤다. 


아침에 일어나 평소처럼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쪽 코에서 액체가 주르륵 흐르기 시작한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반바지에 반팔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했는데, 갑자기 왠 콧물. 당황스럽다.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날씨를 검색하니 오늘부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고 한다. 64년만의 가을 한파. 제기랄. 여름옷만 잔뜩 챙겨왔는데.


원단이 두껍고 길이가 긴 옷가지들을 골라 여러 겹으로 껴입은 후 급히 나갈 채비를 마쳤다. 단풍놀이 계획은 뒤로 미루고 우선 옷부터 사기로 했다. 명동에 있는 백화점에 들러 기모가 들어간 후드 집업과 청바지, 두툼한 외투까지 구매했다. ‘쇼핑은 한달 계획에 없던 일이었는데…’ 길게 뽑혀진 영수증을 보니 한숨과 콧물이 동시에 흘렀다. 


단풍놀이고 뭐고, 일단 좀 쉬고 싶었다. 하루 3잔 이상씩 마시던 커피 대신 따뜻한 차 생각이 간절했다. 열심히 검색 후 도심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한 찻집을 찾았다. 네비의 안내에 따라 들어선 좁은 길목 안쪽에는 작은 정원을 품은 이층 가옥 한채가 놓여있었다. 긴가민가 하며 서성이는데 생활한복을 입은 중년의 여성이 문을 열고 나와 맞아주었다. 

“잘 오셨어요. 어서오세요”


온돌방에 놓인 좌식테이블과 다도세트, 꽃수가 놓인 방석, 창호문 등등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은은한 차 향기가 어우러진 곳이었다. 통창 가까이 자리를 잡고 햇살을 이불 삼아 벽에 몸을 기댔다. 잠시 후 주인장이 들어와 내가 앉은 자리에 놓인 무쇠솥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메뉴를 묻자 

“저희는 메뉴판이 따로 없어요. 제가 그날의 분위기와 오시는 분의 성향에 맞게 차를 내어드린답니다”


주인장은 차와 함께 곁들일 다식을 내어준 후 곁에 앉았다. 찻물을 우리며 차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려다 녹차와 홍차에 대한 차이를 물었다. 그러고 보니 자주 마시는 차인데도 왜 알지 못했을까(곁에 두고 가까이 하며 놓치는 것들은 비단 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는 모든 차는 녹차 잎으로 만들어지며 종류를 구분하는 데에 여러 요소가 있지만 대표적 기준이 발효의 정도라 했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차 중에서 비발효차를 ‘녹차’, 반발효차를 ‘황차’, 완전발효차를 ‘홍차’로 구분할 수 있다.


그는 첫 번째 차로 ‘황차’를 내어주며 말했다. 

“감기 기운 있을 때는 황차가 좋아요. 차 빛깔도 오늘 같은 가을과도 닮아있구요.”


그후로 녹차, 홍차, 메밀과 개수나무꽃을 블렌딩한 차까지 세 시간 가량을 차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일상까지 나누었다. 그가 다도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차를 위해 쏟은 30년 간의 열정과 노고까지. 그렇게 마신 차와 보낸 시간에 대해 지불한 비용은 고작 5천원이었다. 그곳을 나설 때 즈음 멈출 줄 모르던 콧물은 멎어 있었다. 


고즈넉한 가을의 정취와 사람의 온기를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다회




작가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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