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보이는 태도는 결국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다.
타인과의 관계는 늘 거울처럼 나를 비춘다. 그 거울은 때로 왜곡되었고, 때로는 찬란하며, 때로는 냉소적이다. 그러나 그 모든 반응의 출발점은 결국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는 우리가 세상과 맺는 모든 관계의 ‘밑그림’이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나 모욕, 혹은 실망을 그 사람의 문제라고 여긴다. 물론 타인의 책임도 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비슷한 관계의 패턴이 나타난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지?”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을까?”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사람은,
타인에게 존중받는 법을 모른다.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는 사람은,
타인의 감정에도 무감각하다.
내 슬픔을 ‘예민함’으로 취급한 사람은,
누군가의 눈물에도 침묵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내 기쁨을 함께 축하해 준 나 자신은,
타인의 성취도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다.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는 세 가지 방식으로 외부에 드러난다.
첫째, 경계 설정의 방식이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무례한 말에 침묵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책이 습관이 된 사람은,
경계를 넘는 사람에게도 “내가 예민한 걸까?”라고 되묻는다.
둘째, 공감의 깊이이다.
자기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사람만이,
타인의 감정에도 열린 마음으로 반응할 수 있다.
감정을 억누른 채 살아온 사람은,
타인의 분노와 슬픔을 ‘과하다고’ 느낀다.
셋째, 신뢰의 회복력이다.
자기 자신과의 신뢰가 회복된 사람은,
외부로부터의 비판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실수했을 때 방어하지 않고,
성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자기와 맺는 관계는 결국,
세상을 어떻게 대할지를 결정한다.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존중받기를 바라는 것은, 빈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려는 것과 같다.
관계의 시작은 항상 ‘나’와의 대화다.
나에게 진실한 사람이, 타인에게도 진실할 수 있다.
나를 위로해본 사람이, 타인도 위로할 수 있다.
나에게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다.
진짜 관계는 타인을 통해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나로부터 시작해 타인에게 닿는 것이다.
그 출발은 늘,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함수로 본다면,
타인의 반응은 독립변수가 아니라
결과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