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궤를 뽑았다. 화산여 궤에 대해 생각해보다.
사랑이란, 어떤 때엔 거처가 아니라 여정이다.
고정되지 않는 감정들, 불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
그 안에서 나는 여행자가 되었고,
그는 지나가는 산이 되었다.
'화산여'란 주역의 괘는 말한다.
불(火)은 위로 타오르고,
산(山)은 그 아래 견고히 버티고 있다.
이 둘은 서로를 품을 수 없고,
끊임없이 어긋난다.
마치, 서로를 갈망하면서도 끝내 같은 곳에 머물 수 없는 연인처럼.
그는 나에게 집이 되어주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뿌리가 되어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그와의 시간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알아가야 했다.
나는 내게 어떤 상처를 허용했고, 어떤 진실을 감당할 수 있었는지를.
그리고 그의 혼란 속에서도,
그를 미워하지 않으려는 나를 지켜보았다.
화산여는 말한다.
불의 여정은 언제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고통이라고.
그러나 그 속을 통과한 자만이 진짜 자신을 만난다고.
사랑이 깨진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의 불길이 나를 정련했다.
멈춘 곳에서의 기쁨과 환희를
그렇게까지 기뻐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다시 떠나가야하는 나그네이므로.
나는 더이상 누군가의 ‘집’을 찾지 않는다.
나는 여정 그 자체가 되기로 했다.
방랑하며 불길을 지나온 자의 눈으로,
나는 나의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