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대물림을 멈추는 첫 번째 방법, 자각
나는 종종 두려웠다.
내가 정서적으로 방치된 아이였다면,
어른이 된 나는 내 아이를 또 그렇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몰라서
무심하게 지나쳐 버릴까 봐.
정서적 방치는
눈에 보이는 학대보다 훨씬 조용하다.
아무 말이 없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나간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감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아이의 슬픔은 지나가는 일로 취급되고,
외로움은 “그 정도는 괜찮잖아”로 덮인다.
그때 아이는 배운다.
“내 감정은 표현할 가치가 없구나.”
이제 그 아이가 어른이 되면,
자기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어색해진다.
감정을 느끼는 대신 일로 채우고,
혼자 있는 대신 누군가를 돌보려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자기 아이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야 깨닫는다.
“내가 어릴 때 이렇게 울었는데,
그때 아무도 날 안아주지 않았지.”
그러나 바로 그 깨달음이,
대물림을 멈추는 첫 신호다.
그건 ‘죄책감’이 아니라 ‘의식의 회복’이다.
부모가 되는 일은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결핍을 알아차리고 멈추는 일이다.
“괜찮아, 엄마도 오늘 외로웠어.”
그 한 문장은
아이의 내면에 새로운 회로를 만든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나누는 방식으로
관계는 천천히 회복된다.
정서적 방치를 끊는 유일한 방법은
감정의 언어를 다시 배우는 것이다.
거창한 교육도, 완벽한 공감도 필요 없다.
단지 말해주는 것.
“너의 감정은 중요하다.”
그 말 한마디가 세대를 바꾼다.
나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감정을 억누르던 습관을 내려놓고,
아이처럼 솔직해지려고 애쓴다.
때로는 서툴고, 때로는 늦다.
하지만 그것이 성장이다.
나는 내가 겪은 공허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건 나를 이해하는 또 다른 언어가 되었고,
이제는 아이를 이해하는 통로가 되었다.
정서적 대물림은 ‘사랑의 결핍’에서 시작되지만,
‘사랑의 자각’으로 멈춘다.
그리고 나는 매일 다짐한다.
나는 나를 방치당했지만,
내 아이는 다르게 사랑하겠다고.
“감정을 느끼는 법을 배우는 건,
세대를 치유하는 첫 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