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질 듯한 와인 글라스이자 거울로서의 나
*사진: Unsplash
오래전에 썼던 소설들을 다시 꺼내어 읽다가
내 마음속 내가 사랑했던 이들을 그려보다가
문득, 그들의 마음속에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한 박자 늦게 이해했다.
내가 웃을 때 그들은 또 다른 의미로 웃었고,
내가 침묵할 때 그들은 흔들렸다.
나는 늘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째서 그런지는 모른다.
그저 침묵이 익숙한 상태로 자라와서 그렇다고 생각해 본다.
어떤 이는 나를 미지의 실험체처럼 관찰했다.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을 바라보듯이.
혹은 자칫 깨어질 것만 같은 매우 고급스럽고 얇디얇은 와인 글라스를 만지듯이
멀리서 나를 보고
내 표정을 살피고
내게 질문들을 했다. 나에게는 영영 닿지 않을 이상한 질문들.
그가 나에게 그런 말들을 할 때,
나는 이미 그가 모르는 세상 속을 걷고 있었다.
그는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은
그의 세상과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그래서 더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알지도 못하는 그리움
나도 어쩌면,
나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을 그 누군가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품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똑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제야 그런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이는 나를 기억의 잔향으로 붙잡으려 했다.
그는 나의 머리카락의 아련함
손 끝의 온도
내가 웃으며 고개를 기울이던
그 뺨의 솜털들을
기억하려고 했다.
그는 나를
사라질까 봐 기록해야 하는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내게서 떨어진 추억의 조각들을 마음에 간직하려 했다.
그는 나를 애정했지만,
그만큼의 강렬함으로 두려워했다.
자신을 잃을 것만 같은 그 공포
또 어떤 이는
나를 자기 안의 어둠을 모조리 비추는 거울로 여겼다.
그는 나를 통해
자신의 더러움 그 역겨운 것들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정오의 태양 아래 널어놓은 짐승의 내장처럼
그 순간을 지나면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을 끌어안기 전까지는.
나는 그를 이해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나를 품을 수 없다. 아직 자신을 직면하고 싶지 않으니.
그게 살아생전에 되는 일인지는 알 수 없다.
그건 나의 것은 아니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달랐지만,
결국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사랑했지만,
그들의 사랑은
내가 누구인지 보다
제각기 자신이 만든 세상의 방식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의 시선 속에서
수많은 조각들로 존재했다.
누군가의 욕망, 누군가의 위로,
누군가의 미련, 누군가의 종교로.
그러나 단 한 번도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나를 사랑하는 그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