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위한 착한 사람의 함정

타인을 위한 착한 사람은 아주 쉽게 매우 나쁜 일들을 저지를 수 있다.

by stephanette

- 시몬느 드 보부아르, 『제2의 성(Le Deuxième Sexe)』, 『모호성의 윤리(L’Éthique de l’ambiguïté)』


'착함'이라는 도덕적 포장 속에서 숨은 자기 중심성

보부아르는 착한 사람은 겉보기엔 도덕적이고 온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양심의 평화를 지키는 데만 관심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는 확신 안에 안주하고,

세상의 불의나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능동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즉, 착함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정당화의 수단이 되어버린 상태이다.


"그들은 자신의 선량함을 통해 세계의 죄로부터 자신을 분리한다."


타인을 위한 착함의 함정

보부아르는 착한 사람이 하는 선행의 동기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 말한다.


그는 타인을 진짜 이해하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기보다는, 나는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아라는 자기 확신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세계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하고, 그저 착한 나의 도덕적 자화상만 유지한다.


그건 결국 도덕적 자기중심성의 형태이다.

자신의 내면 평화를 위해서만 선을 행하고,

그 선이 타인에게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


'타인을 위한 착함'은 '선택'에 대한 회피의 결과이다.

타인을 위해 착한 사람은 아주 쉽게 매우 나쁜 일들을 저지를 수 있다.


어떤 상황에도 별 반응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 선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은 착한 사람으로 비춰진다.

수동적으로,

주변을 따라,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결과,

나타난 '착함'은

매우 쉽게 악함으로 변질될 수 있다.

주변인들이 악하다면 선택을 하지 않는 이들은 악을 행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그러하게 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자기의 삶을 '선택하지 않음'으로 만들어나간다.


선한 무책임 - 모호성의 윤리

인간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사용할 때만 의미가 있다.

그러나 착한 사람은 자신의 도덕적 만족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타인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해방시키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이유로 세계의 불의에 무책임하다.


즉, 선의의 무책임
나는 누군가를 해치지 않았으니 괜찮다는 태도는 바로 착한 사람의 자기중심성이다.


그는 악을 행하지 않지만,

불의 앞에서 침묵함으로써 결국 그 불의의 공범이 된다.


진정한 선함의 의미

착한 사람, 온순한 사람은

사실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질서에 순응함으로써 자신의 억압을 재생산한다.


그에게 착한 사람은 자기희생적이지만,

그 희생을 통해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두는 자기중심성을 드러낸다.


그는 자신을 타인의 희생으로 정의함으로써
결국 자기 자신을 신격화한다.


진정으로 착한 사람이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중심성 속에서 자신의 선함에 도취되는 사람도 아니다.


선을 향해 의지적으로,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자.

그가 바로 진정한 의미의 ‘착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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