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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주는 선물

역시 겨울이 좋은 건가.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하기 싫은 일들에 내색하지 않는 스킬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수련의 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모성애에 대한 당연한 가정이 마치 신화처럼 살아 숨 쉰다는 것이다.

그래서 육아를 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속았다!"


선전이나 광고를 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기 때문일 경우도 많다.

"착하게 살자"라는 가훈은 그렇지 않음을 가리기 위한 용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모성애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들도 그런 선전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아이를 키울 때의 어려움들은 한두 가지는 아니다.

가장 심각한 고통은 말이 통하지 않는 이와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의 생존을 챙겨야 한다. 물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어느 선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타인에게 맞추는 것이 습관인 나는 그 지점에서 상당한 고충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신생아는 2~3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는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위의 용량이 적으니까.

그러니 잠을 자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한 번 깨면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나중에는 꿈과 현실이 구분이 되지 않는 지경에 도달한다.

안고 있던 아이를 졸다가 손에서 놓치는 순간, 정신을 차리면 꿈이다. 이런 꿈은 계속 반복되었다.

밥을 먹거나 생리현상을 해결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직장을 다니면서 집안일을 하면서 육아를 하는 것은 공중에 매달려 목숨 걸고 하는 줄타기에 가까웠다.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다. 고양이들은 나를 애정한다. 그 애정이 깊어지면 고양이는 선물을 갖다 준다.

죽은 벌레나 새, 혹은 죽은 쥐. - 이런 건 도대체 어디서 갖고 오는 거야? 싶을 정도의 것들이다.

집사를 위해 사냥해 온 의기양양한 고양이 앞에서 비명을 지를 수는 없다.

돌보는 존재는 결국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마음을 시험한다.


아이들도 커가면서 그들이 가진 관심사에 따라 선물들을 갖고 온다.

한동안은 여름을 싫어했다. 죽은 매미의 사체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불쑥 내미는 손에는 커다란 벌레가 들려있다.

어쩔 수 없다. 포기를 한다. 그리고 손바닥을 내밀어준다. 비명은 안으로 삼킨다.

해맑은 아이의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렇지 않은 척 즐거운 척을 당연히 하게 된다.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재래시장에 가서 여러 가지 수산물들을 직접 만져보게 했다.

물론, 시장의 상인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만진 수산물들은 구입해서 왔다.

아이는 심사숙고해서 궁금한 것들을 고른다.

뜰채로 건져진 낙지는 꿈틀거리며 물을 튀겨낸다.

물속에서 반짝이는 수많은 색채의 생명체를 만지면서 아이의 눈은 동그랗고 커다랗게 변했었다.

그리고 그런 날엔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조합의 재료들로 요리를 하게 된다.

그러니 집안일은 호기심의 탐색이 되기도 하고, 행복한 시간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늘 시간과 할 일에 허덕이던 나로서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나보다 더 바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기도 쉽지 않다.

학원에서 돌아온 둘째가 쓰윽하고 하얀 봉투를 내민다.

"편지 왔어?"

나의 질문에 둘째는 씨익 하고 겸연쩍게 웃는다.


다시 보니 붕어빵 봉투이다.

"와아~~ 붕어빵이다. 이쁜이 엄마 줄려고 사 온 거야??

꺄아~~~ㅅ

잘했쬬 잘했쬬. 에구 이뽀라~~!!"

나의 반응에 둘째는

"하나밖에 없어."라며 겸연쩍게 웃는다.


둘째는 비 오는 밤에 패딩도 없이 학원을 갔다 왔다.

어째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겉옷도 없이 겨울을 나려고 한다.

가끔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전화가 오기도 했다.

"어머니~ OO이가 패딩이 없나요? 안 입고 와서 걱정돼서 전화드렸어요."라고.

그러면 난 빵 터져서 웃는다.

"롱패딩, 숏패딩 다 있는데 열체질인지 안 입고 다니네요.

앞으로 입으라고 다시 말할게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그래도 요즘 겨울은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학교를 가진 않는다.

자유로운 영혼이다. 나를 닮았다.


후드티 하나만 입은 둘째는 비를 맞으며 밤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오고 있었을 것이다.

따끈한 붕어빵 냄새에 홀려서 그걸 받아 들고 수없이 망설였을 것이다.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뜨거운 붕어빵으로 손을 녹이고 몸을 녹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 둘, 셋 그렇게 먹으면서 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하나 남은 붕어빵을 나에게 불쑥 내밀었을 생각을 하니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하나밖에 없어."라며 겸연쩍게 웃는 둘째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그럴 때의 둘째의 눈빛에 지나가는 반짝임을 참 좋아한다.

"잘 먹을게. 와우 슈크림이닷~~ 꺄아~~ㅅ"

물론, 나는 팥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슈크림 붕어빵을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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