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을 보았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이란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무의식이란 의식적으로 자아(ego)가 거부한 모든 것들의 총합이다.

집단무의식이란 사회화 과정을 통해 누적되는 과거 지식과 태도의 총합이다. 가문을 타고 내려오는.


출퇴근길에 드라이브를 하면서

기도를 하거나 환영을 본다.

환영이라기보다는 떠오르는 어떤 심상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러는 이유는

자동차 안에서는

마치 엄마의 자궁 안에서처럼 보호받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라는

어떤 심리학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본성이 더 드러나거나

의식과 무의식의 접점에 가까워지기 쉬운 상태라고.

어쩌면, 난폭운전을 하게 되는 이유도 이런 이유라고도 한다.

개인차에 따라서 드러나는 본성이 어떤 형태일지는 다 다를테니까.


무의식에 접근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는 건

맞는 말 같다.

그래서 늘 새벽 출근길 차 안에서 기도를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의 영혼과 그들의 죽은 모든 조상들의 영혼을 위해서.

그리고 요즘은 나를 위해서도 기도를 한다.

가야할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가끔은 나의 것이 아닌 에너지에 접속하기도 한다.

그걸 뭐라고 불러야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나의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안다.


환영을 보았다.

누군가의 죽은 조상들의 영혼

많은 무리들이 내게 고개를 숙이고 관심을 가졌다.

마치, 처음 인사를 간 집안에서 온 가족 앞에서 인사를 하는 기분이랄까.

내게로 가까이 고개를 돌린 그 영혼은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이 사람은 누구지?"라는 호기심

"왜 기도를 하는거야?"라는 수근거림들

그래, 영혼들도 수근거리곤 하나보다.

그렇다고 기도 중에 자기소개를 하기는 민망하다.


다음날,

같은 지향으로 기도를 했다.

환영을 보았다.

누군가의 죽은 조상들의 영혼

많은 무리들 중에 내게 고개를 숙이고 관심을 가졌던, 바로 그 영혼이다.

어제의 그 다정하고 호기심 넘치던 얼굴은

귀신의 그것으로 변해있었다. 삐죽삐죽한 이빨들로 금세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딱히 뭐라 말을 하진 않는다.

나도 말을 건네진 않는다. 질문을 하지 않는다.

위험해보이는 에너지에 말을 걸지 않는 것은 이쪽 세계의 철칙이다.


그리고 나서 그 책이 생각났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너무나 아름답게도 잘생긴 귀족청년

그리고 그가 저지른 악행들로 늙고 추하게 변해버린 초상화

그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의식과 무의식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대외적인 멋진 가면, 페르소나 혹은 에고.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고 거부하고 회피해버린 조각들의 더미인 무의식.


그것은 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과거의 조상들 그리고 그 윗대의 조상들에서 대대로 내려온 것들이다.


나는 이틀의 환영을 통해

사람의 빛과 어둠 그리고 집단 무의식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 빛과 어둠 그리고 내게 영향을 미친 그 수많은 것들을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 본다는 의미이다.


그 모든 것들을 대면하고 인정하고 수용할 때,

그제서야 나는 내가 가야할 길을 선택할 수 있고,

비로소

진정한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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