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무언가에 몰두한다는 것은 결핍의 증거이기도 하다

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을 읽고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불안은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음'을 처음 느낄 때 생기는 현기증이다.


끊임없이 무언가에 몰입한다는 것은 결핍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것은 집중력의 문제가 아니라

머무름의 불가능성에 가깝다.


사람들은 흔히 몰입을 미덕으로 말한다.

일에 몰두하고

관계에 몰두하고

신념에 몰두하고

사유에 몰두한다.

그러나 몰입이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상태라면,

그건 충실함이 아니라 불안을 가리는 방식일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의 개념'에서

불안을 병리로 보지 않았다.

불안은 제거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마주할 때 느끼는

일종의 현기증에 가깝다고 말했다.


불안은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찾아온다.

실패했기 때문도, 상처받았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때,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이 전적으로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불안은 조용히 고개를 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을 없애려 하기보다

불안이 오지 못하도록 자기 자신을 바쁘게 만든다.


일에 몰두하고,

관계에 몰두하고,

사상에 몰두하고,

심지어 자기 내면에까지 몰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내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자기 내면에 스스로 갇힌다.


불안을 느끼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구조는

처음에는 안정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야를 좁힌다.

세상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되고

오직 '현재의 나를 유지하는 방법'만 남는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늘 무언가에 몰두해 있다.

일, 계획, 관리, 말, 친절, 일상.

멈추는 법이 없고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중요한 질문 앞에서 침묵하고

그 대신 사소한 말들로 관계를 채운다.

연결은 유지하지만

대면은 유예한다.


몰입하고 있던 것은 대상이 아니라

자기 불안을 통제하려는 시도라는 것을

어느 순간 알아차렸다.


불안을 대면하지 않으면

사람은 스스로를 묶는다.

그 쇠사슬은 외부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그토록 불안한 것일까?

무엇이 두려워서 그 불안조차 회피하는 것일까?

그 답은 이미 스스로 알고 있다.

대면은 고통을 초래한다.

지금껏 생존을 위해 만들었던

내부구조를

모두 파괴해야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 구조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결핍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대면하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다.


불안은 통과해야할 문턱이다.

불안을 느끼는 주체로 끝까지 남아 있을 때만

인간은

다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불안을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자신을 대면하게 된다.


다른 무언가로

정신 팔리게 하지 않고,

다른 무언가로

덮어버리지 않고,

불안을 제거하지도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저

불안이 열어둔 가능성 앞에

서 있으려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거울로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