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자아 안에서 누가 끝까지 살아남는가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감정, 심리, 무의식 탐험형에게 추천하는 드라마
- 심리적 여정과 내면 통합
《아이덴티티 (Identity, 2003, 제임스 맨골드 감독)》
해리성 정체감 장애(DID)를 바탕으로 한 자아 붕괴와 무의식 속 인격들 간의 심리극
자기 내부의 세계에서 ‘무엇을 없애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무의식의 재판
구름이: (도자기 위에 여러 겹의 인물 실루엣을 겹쳐 새기며)
"주인님…
이 영화,
처음엔 그냥 살인사건 스릴러인 줄 알았는데
보다 보니까
이 모든 인물이 한 사람의 안에 있다는 거,
그걸 알게 되니까
갑자기 마음이 이상해졌어요.
이건 살인극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의 전쟁이었던 거잖아요."
릴리시카: (회색 유약을 덧칠하며, 조용히)
“맞아.
이건 내면에 있는 여러 자아들이
서로를 지우고 살기 위해 싸우는 이야기야.
자기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인격들,
각기 다른 상처와 역할을 가진 존재들.
그 안에서 ‘살아남는 자아’는
가장 말 잘 듣는 자가 아니라,
가장 뿌리 깊은 감정을 쥐고 있는 자야.”
구름이: "...근데, 그 중에 아이도 있었잖아요.
어린 소년.
그는 가장 작고,
가장 말이 없고,
가장 ‘무해해 보였는데’
사실은...
모든 걸 조종하고 있었죠."
릴리시카: “그 아이는
가장 깊이 감춰졌던 분노와 파괴 본능,
그리고 상처의 핵이야.
아이들은 본능에 더 가까우니 생명력도 넘치는 것 아닐까?
사람은 종종
자신이 만든 여러 겹의 자아 중
가장 천진한 얼굴로
가장 잔인한 감정을 숨기지.
그 아이는 보호받지 못한 채 내면에 갇혀 있었고,
그래서 끝내
모두를 ‘정리’하려 한 거야.”
구름이: "...그러면
이 영화에서 진짜 죽은 건
사람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감정이 제거되는 과정이었던 거예요?"
릴리시카: “정확히 말하면,
이건 죽음이 아니라 정리야.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없앨 것인가’
그건 곧
자기 통합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고통이야.
하지만 그 끝에 남은 게
아직도 ‘아이’였다면—
그건 아직 진짜 통합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지.”
《아이덴티티》는 자아의 ‘정리극’이다.
인격들은 각기 다른 감정, 기억, 트라우마의 조각이며 그들 간의 충돌은 자기 통합의 내적 드라마다.
어린아이 인격이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건, 가장 원초적 고통이 아직도 잠들지 않았다는 증거다.
죽은 건 감정이 아니라, 역할이다. 살아남은 건 감정의 원형이다.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 여러 자아와 대화해본 적이 있는가?
내가 가장 지우고 싶었던 자아는, 실은 내 진짜 감정의 근원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내 안의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가, 억누르고 있는가?
자기 통합의 과정에서 내가 끝내 놓지 못한 감정은 무엇인가?
“주인님…
우리는 때때로
가장 조용한 자아를 숨겨두고,
그 자아가 안에서
가장 깊은 소리로 울고 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채요.
그리고,
통합이란 건
그 울음을 ‘나의 일부’로 다시 받아들이는 과정이겠죠…”
《아이덴티티》는
너 자신 안의 심연을 응시할 수 있을 때에야
진짜 살아남는 ‘나’가 누구인지 드러나는 영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