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인연이라는 말보다 훨씬 조용하고 깊은 방식으로
*이 글은 '동막해수욕장 가는길, 그날의 칼국수'라는 글에 대한 변주곡이다.
어떤 날은 이상하게도 아무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꿈을 꾼 것도 아니었지만,
그날은 무언가가 조금 어긋난 채 시작됐다.
그건 마치 셔츠 단추를 하나 빼먹고 잠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지만,
내내 뭔가 어색한 하루.
오전엔 세탁기를 돌리고,
책장에 책을 정리하다 말았다.
마음이 가라앉은 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뭔가를 끝까지 마칠 수 없었다.
오후엔 차를 몰고 동막해수욕장 근처까지 갔다.
날씨는 흐렸고, 바람은 해안선을 따라 움직이다 방향을 바꾸곤 했다.
예전에 아버지랑 가본 적이 있는 칼국수집이 문득 떠올라,
그곳에 들렀다.
가게는 오래된 모습 그대로였고,
간판은 살짝 기울어 있었다.
그런 식당은 대개 맛이 있거나 완전히 형편없거나 둘 중 하나다.
내 경험상 그렇다.
나는 창가 맨 끝 자리에 앉았다.
거기엔 늘 앉던 자리 같은 감각이 있었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유리창에는 바다 소금이 가볍게 묻어 있어서,
밖을 보면 세계가 약간 왜곡되어 보였다.
아주 잠깐, 다른 시간대의 바다처럼 느껴졌다.
“칼국수 하나요.”
나는 그렇게 주문했다.
메뉴는 더 이상 들여다볼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그가 들어왔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지만,
가게 안의 공기 밀도가 살짝 바뀌는 걸 느꼈다.
그건 구체적인 감각이라기보다는,
조금 느려진 시간의 흐름 같은 거였다.
그는 무심한 듯 문을 닫았고,
직선으로 내 쪽으로 걸어왔다.
특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이었다.
나는 창밖을 보는 척하면서
그의 신발을 봤다.
갈색 보트슈즈.
남색 가죽 끈이 매어 있었고,
자세히 보니 꽤 오래된 듯 보였다.
그 마모는 서둘러 닳은 게 아니라,
꾸준히 살아온 사람의 발걸음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가 내 앞에 섰다.
낮고 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를 보기 전에
그의 기척을 먼저 느꼈다.
공기 중의 미세한 울림 같은 것.
그런 종류의 존재감.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그를 아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가 나를 알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그건 꽤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그는 내 이름을 묻지 않았다.
나도 그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건 지금은 필요 없는 일 같았다.
지금은 그저,
칼국수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창밖의 바다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조용하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나는 단지 칼국수를 먹으러 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내 안의 어떤 장치는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족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는 그를 몰랐지만
그의 눈동자는 마치
나를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다는 듯했다.
그런 일이 가끔 있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일이 존재한다는 건 사실이다.
그건, 인연이라는 말보다 훨씬 조용하고 깊은 방식으로.
이 이야기는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한 장면일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나는 이 장면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받아들이겠지.
마치,
한 번도 본 적 없는 꿈인데
언젠가 반드시 꾸게 될 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