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나는 아직 그를 만나지 않았을 뿐이다.
어떤 날은 도무지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예감이란 게 그런 거겠지.
딱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오전엔 세탁기를 돌렸고,
오후엔 드라이브를 나섰다.
바닷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조용했다.
바람은 방향을 헷갈려했고,
칼국수집 간판은 살짝 삐딱하게 기울어 있었다.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갔던 곳이었는데,
기억은 마치 오래된 영상처럼
음소거 상태로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늘 앉던 자리로 갔다.
창가 맨 끝.
소금기 섞인 바람이 유리창에 들러붙어
바다를 비틀린 렌즈처럼 만들고 있었다.
“칼국수 하나 주세요.”
익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메뉴를 보지도 않았고,
직원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가 들어왔다.
문이 덜컥 열리고,
딱 한 걸음만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저 가게 안의 공기가
조금 더 낮아진 것을 느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게 내 귀를 빠져나가
척추를 타고 내려가더니
발끝에서 식은땀처럼 빠져나갔다.
그가 걸어왔다.
직선으로.
길게 휘어지지도 않고,
고개를 갸웃거리지도 않고.
그냥— 정확하게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처음엔 창밖의 바다를 보는 척했지만,
실은 그의 발을 보고 있었다.
갈색의 보트슈즈는 남색의 가죽끈이 달려있었다.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낡아 있었다.
그러나 그 낡음엔 이상한 품격이 있었다.
그건 부주의에서 비롯된 마모가 아니라,
마치 매일같이 먼 곳에서 걸어온 사람의 낡음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가 말을 걸었다.
목소리는 더 가까워졌고,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를 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눈을 먼저 본 건 아니었다.
나는 그를 인식하기 전에,
그의 기척과 숨결을 먼저 받아들였고,
그제야 시선이 그의 얼굴을 따라 올라갔다.
그 순간 나는 아주 기묘한 확신을 느꼈다.
"이 사람, 나를 안다."
더 이상하지 않게 들으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내가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인데,
그의 기억 안에는 내가 이미 살아 있었다.”
그는 내 이름을 묻지 않았다.
나는 그의 이름을 묻고 싶지 않았다.
그건… 지금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냥, 칼국수를 기다리는 시간이었고,
우리는 마치 오래전부터
이 바닷가 칼국수집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들처럼,
그냥 그렇게 앉아 있었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후 3시 16분에.
나는 단지 칼국수를 먹으러 갔을 뿐이었는데.
그리고 어쩌면—
그는 정말로 미래에서 걸어온 사람일지도 몰랐다.
사족
미래에 만날 인연에 대한 내 마음대로의 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