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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칼국수집에서의 정적

나는 이 만남이 시간 속에서 일어날 것이라 믿지 않았다.

by stephanette

*이 글은 '동막해수욕장 가는 길, 그날의 칼국수'라는 글에 대한 변주곡이다.


바람이 불었다.

방향은 알 수 없었다.

동막해수욕장 가는 길은 비탈지고, 오래되었다.

나는 차를 몰고 나갔다.

시간은 오후였다.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세탁기를 돌리고 나섰다.

돌아보면 그런 날들이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 일도 예고되지 않는 날.


칼국수집 간판은 비스듬했다.

바람에 흔들리며 매달려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온 적이 있었다.

기억은 오래되어 소리가 지워졌고,

눅눅했다.


창가 끝자리에 앉았다.

유리는 얼룩져있었다.

그래서 바다도 비틀어졌다.


칼국수를 주문했다.

목소리는 내 것이었고,

직원은 듣고 있었지만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가 들어왔다.

문이 덜컥 열렸다.

그의 걸음으로 분위기는 달라졌다.

공기가 낮게 깔렸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나를 향해 곧바로 다가왔다.


그의 신발이 보였다.

갈색의 보트슈즈였다.

남색 끈이 달려 있었다.

낡았다.

쓸모를 다한 폐기가 아니라,

쓸모를 견디며 살아남은 흔적이다.


그는 내 앞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소리는 내 귀를 지나 척추로 흘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를 보았다.


그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처음 만났지만,

그는 나를 알고 있었다.

그는 내 이름을 묻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식탁에는 바다가 있었다.

칼국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야기는 그때 시작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후 세 시 십육 분.

나는 단지 칼국수를 먹으러 갔을 뿐이었다.


사족

우리는 서로에게 없었고,

지금도 없지만,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만남이

시간 속에서 일어날 것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이것은 일어났던 일이다.

그 시간대는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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