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의 책장 - 고위공직자용 책상이라 명명했다.
아빠는 이상한 지점에 신경을 많이 쓴다.
이해는 안 가지만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책상 스탠드를 몇 날을 고심해서 골라서 사줬다.
30만원 상당의 고가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너무 고가이다.
아쉬운 점은 나에게 한마디 상의가 없었다.
기능에 충실한 스탠드
그날 이후 나는 그레이를 싫어한다.
나의 고등학교 때 책상은
밝은 그레이톤의 인조 가죽으로 마감한
밝은 네이비의 테두리가 있는
거대한 책상이었다.
지금 쓰는 책상보다 더 크고 웅장했다.
그리고 미학적인 기준으로는 보자마자 탈락이었음직한
짙은 그레이의 책상 스탠드가 있었다.
밤샘 공부를 며칠을 해도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그 무게감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조달청이나 나라장터의 주력 책상으로 선정되고
기획재정부의 기준이나
감사원이나 내부 감사팀에서
나온다고 해도 무사통과할
그런 디자인이었다.
낙엽을 붙인 캘리그래피로 적어 놓은 시구절이나
만년필의 청색 농담으로 섬세하게 그린 풍경화들
흑백 사진 작품들을 콜라주 해놓은 패널들
연한 핑크색의 아름다운 베고니아와
연한 테라코타 색상의 이탈리아산 화분들이
장식하고 있는
나의 방
그중 가장 큰 공간을
그 책상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투명인간 모드였다.
언니는 집안의 장남이었고,
남동생은 남자였다.
보통은 남자가 주인공이지만,
언니는 이미 남자로 키워지고 있었다.
언니는 초등학교 때,
자신의 꿈은 현모양처라고
과학자를 하지 않겠다는 에세이를 썼다가
아빠한테 들켜서 무지하게 혼났다.
그러던 언니가 전 과목 올백점에서 몇 개 틀렸던 날의 저녁이다.
엄마와 아빠가 크게 싸웠다.
나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새벽까지 잠들었다.
새벽에 목이 말라 나갔다가
세탁기 위에
갈가리 찢긴 자습서의 잔해를 발견했다.
그것은 마치
태양 빛에 말라가는 야수의 반쯤 뜯긴 사체 같았다.
내장을 다 드러내고 하이에나의 공격을 받기 직전의 긴장감
그 이후로
언니는 눈을 뜬 시간은 계속 공부만 하고 살았다.
그게 차라리 편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탁기 위의 사체는 한 번으로 족하니까.
나는 투명인간이었다.
여자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착하고
말을 잘 들으면
성적이야 아무 상관없었다.
아무리 노력을 해서
성적이 좋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게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나는 살면서 십 대가 가장 암울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게 좋은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편안해지는 삶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책상에 관한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