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에겐 둥지란 없다! 새둥지 자연사, 알모으기 정치사
창의성과 예술적인 감각은 인간만이 영위할 수 있는 걸까? 진화론을 제시한 찰스 다윈은 가장 예술가다운 생물체로 바우어새 숫컷을 지목했다. 얼마나 닮았냐면, '집짓기 새'라는 번역도 있었다. 새가 만든 집은 예술이 아닌 걸까? 데이트 만을 위해 둥지를 만드는 이 '숲 속의 건축가'는 가지를 이용해 무대 같은 둥지를 만들고, 나무조각 주변에 색을 띈장식을 더해 암컷을 유혹한다. 산딸기로 붉게 칠한 둥지도파란색 플라스틱 쓰레기만 모아 장식한 둥지도 있다. 이 '허니문 둥지'는 1회용이며 모든 둥지는 균일하게 타원형이다. <자연선택> 전시는 이 확대된 타원형의 둥지에서 출발한다. 조각인가? 둥지인가? 의아해 하는 사이, "이게 바로 이 전시의 핵심이군" 무릎을 치게 된다. 둥지 사이로 보이는 3채널 비디오 작품은 자세하게 이 둥지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둥지에 대해 약 30분 영상으로 설명한다. 영상 작품의 해설자는 참여 작가인 아버지와 아들 듀오. 아들은 젊은 작가 앤디 홀든 (Andy Holden)이고, 아버지는 유명한 조류전문가 피터 홀든 (Peter Holden)이다. 전시의 제목은 <자연 선택 (Natural Selection)> - 여기서 진화론의 찰스 다윈을 떠올린 건 나뿐이랴.
피터 홀든은 '청소년 조류 캠프'를 열어, 10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새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다는 공로를 인정 받아 영국 기사 작위까지 받은 유명 인사다. 그는 1969년부터 6년 동안 청소년 그룹 멤버를 16만 8천명까지 모아 세계에서 가장 큰 '자연 클럽'을 만들기도 했다. 마치 자신의 열정과 지식을 자신의 아이에게 알려주듯, 피터와 앤디는 주거니 받거니, 관객에게 둥지의 종류, 장소, 재료의 3가지 분류로 나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둥지가 새들에게 우주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를 의미하듯, 부자간의 교감과 관심사는 온기가 가득하다.
“알과 어린 새를 보호하기 위한 둥지는 자연스런 선택이로알려져 있죠. 모든 새들은 알에서 태어납니다. 이후 새들은 알에서 부화한 뒤 바로 둥지를 떠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로 나뉘죠. 정원에서 만날 법한 흑조는 진흙, 지푸라기와 잔가지를 섞어 가장 기본적인 컵 모양 둥지를 만드는 걸 보여줍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 외에 다른 예도 브리스톨 박물관에서 아카이브에서 발견했어요." 지식을 전하는 권위 높은 아버지 피터의 모습. 이에 아들 앤디는 아버지 못지 않은 예술가들만이 가진 시적이고 은유적인 설명을 보탠다. “11월이면 매서운 바람이 불고 빼빼 마른 가지들이 높아 보이는데, 그 가지들 사이를 보고 있자니, 마치 작은 폭발이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림책의 낙서처럼 보이는 건 저 뿐인가요?"
떼까마귀(Rook)의 높은 곳에 지어진 둥지 영상과 함께 필자도 겨울 하늘 황량한 가지 사이로 봤던 둥지를 떠올렸다. 재밌는 건, 우리보다 하늘에 더 가까이 사는 새들 사이에서도 질서가 존재한다니, 놀랍다. 중앙에는 조금 더 나이 든 새들이 둥지를 치고 그 주변에는 좀 더 어린 새들이 둥지를 치기 때문이다.
경악스러워 헛웃음까지 나오게 하는 장면도 있다. 뻐꾸기는 언제나 자신의 둥지를 짓지 않고 자기 보다 훨씬 작은 종의 새의 둥지에 알을 하나를 낳고 날아가버린다. 부화를 기다리고 있던 원래 둥지 주인의 알보다 훨씬 크지만, 까마귀 알은 원래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리고 새끼 뻐꾸기는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원래 주인의 아이들의 알들을 밀어서 바닥에 떨어뜨린다. 엄마 새가 돌아오면 자기 보다 몇 배 큰 아기 뻐꾸기만 둥지에 남아있고 그에게 계속 먹이를 주는 영상에 입이 딱 벌어진다.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에서의 뻐꾸기 둥지는 영어 은어로 정신병원을 상징한다)
자연의 이치인 약육강식이 어떤 법으로 존재하는 듯한 새들의 모습. 전시장 아래 층에 가면 홀든 부자는 새들을 해치는 건 결국 인간임을 작품으로 시사한다. 아들의 콜렉션이 있던, 커밍 뮤지엄으로 쓰인 적 있는 곳에 마치 새의 알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같고 다른 시선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화자는 사람이 아닌, 까마귀다. 이 새는 원래 피터홀든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 나왔던 까마귀다. 터너(William Turner), 호크니(David Hockney) 등 영국 대표 작가의 자연 배경 위에 날아다니는 까마귀는 다른 새의 알을 훔치고 모인 알 도둑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새의 알을 수집하는 건 18세기엔 경제지표 상위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취미에서, 시간이 지나 아이들의 놀이가 되었으며 점점 광적인 강박증처럼 새의 알을 모으는 사람들에 의해 알은 부화되기 전부터 수집되기 시작했다. 유리 액자 뒤, 귀중한 예술품처럼 수집된 알들이 부화되는 수도 보다 많아졌고, 새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으로 간주됐다. 결국 1954년에는 새알 수집이 불법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린 왓슨은 아들에게 자신이 사랑하던 새에 대한 집착과 지식을 물려주고 싶어 했고, 천연기념물 오스프리가돌아왔을 때 1954년 법에 대한 보복으로 새가 돌아온 나무를 베어버린다. 그가 너무 사랑했던 새에 대한 강박이 존재 자체를 파괴하고 싶은 충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어쩌면 너무도 우리 삶과 닮아 있는 잘못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 그 잘못된 사랑은 그가 모아던 수 많은 알들이 부화는 커녕 싸구려 플라스틱 통에서 갇혀 있다가 불법행위로 지목되 파괴된다는 것을 알 때 분노를 이르킨다. (아래 작품은 실재로 영상에 등장한 한 수집가의 알들을 도자기로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강박증을 넘어, 영국이 자연사를 수집, 분류했던 식민지 철학의 역사도 읽힌다. 그들은 18세기도 그랬고 지금도 우리 보다 앞서가는구나, 싶었다.
자연이나, 과학을 보다 심도 있게 다루는 것보다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공부를 우선시 하는 우리 교육도 영국의 이런 방식을 배울만 하다.
전시를 보며 두 명의 시선이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아버지에겐 자연과학과 유전에 대한 경외의 시선을 느꼈다면, 아들에게는 아름다움(예술가의 시선으로 둥지를 창의적인 자연의 이치로 보는 보는 것)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두 사람에겐 공통적으로 마음 아주 깊은 곳에 남다른 철학이 있음을 알게 됐다. 무언가를 그토록 오래 연구한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깊이 있는 철학.
나는 이 전시를 보고 온 뒤, 한 주 내내 영국 <BBC>의 야심 찬 다큐멘터리 <푸른 행성 시리즈2>를 봤다. 상상할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하는 수심 8,045M. 한 줌의 빛도 없고, 음식 조차 없을 법한 이곳에서도 생명을 꿈틀거리고 있었고 이를 연출한 감독 데이비드 아텐보루 경은 마지막 장면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목성과 토성에도 깊은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혹독환 환경에서도 생명이 존재한다면, 우주 저편에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 의견은 그가 다윈에 가까운 무신론자이면서도 우주에 다른 생명체가 있음을 주장하는 중요한 말이다. 우주 과학자들이 이 장면을 봤다면, 심장이 더 가쁘게 뛰었을 정도다. 아텐보루 경이 진화론의 찬성하는 의견을 밝힌 셈이니까. 여기서 다시 질문. 그럼 <자연 선택> 전시를 준비한 앤디홀든과 피터 홀든의 입장은 어떨까? 필자는 너무도 아름다운 둥지를 부리만으로 짓는 새들을 떠올렸고, 다시 예술 작품이, 전시가 되어 심장을 치는 방식에 충격을 받았다. 예술가는, 작품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되짚어 언제나 놀랄 만 한 질문을 던진다.
#StephanieSeungminKim #김승민큐레이터 #AndyHolden
Image Credits:
Andy Holden & Peter Holden, ‘Natural Selection’, 2017, installation view, former Newington Library, London. © An Artangel commission. Photograph: Marcus J. Leith
Still from Andy Holden, The Opposite of Time, 2017, from Andy Holden & Peter Holden, 'Natural Selection', 2017, © An Artangel commission. Photograph: Marcus J. Leith
Andy Holden, How the Artist Was Led to the Study of Nature, 2017, details of the sculptural installation of porcelain eggs in Andy Holden & Peter Holden, ‘Natural Selection’, 2017, installation view, former Newington Library, London. © An Artangel commission. Photograph: Marcus J. Le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