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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파노 Dec 02. 2022

모호함 속에 창조적인 삶

마디 1

     

사람 A : 주위 사람 보기가 원~, 창피해서, 사는 게 뭔~지.

사람 B : 창피를 염려하는 걸 보니, 희망이 살아 있군.     


사람 A : 창피하다는데, 웬 뜬금없이 희망 타령은?

사람 B : 마음속에 희망이 없으면 

         염치나 창피한 것도 사라지고 없는 법이지.     


사람 A : 그런~가?

사람 B : 숨 쉬는 한, 희망은 살아 있는 법이니까.      


마디 2     


독일에는 ‘태양이 뜨고 지는 날’까지 유효한 계약이 있다. 

슈베뷔시-할이란 도시와 인근 도시와 맺은 

소금 광산 폐쇄 계약이 그러하다.

지금도 유효하여 광산이 있는데도 소금을 캐지 않는다.     


‘태양이 뜨고 지는 날’까지는 

계약의 유효기한을 정했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절대 깨지지 말라는 경고의 표시 같기도 하다.      


한 개인의 삶으로 보아서는 

‘태양이 뜨고 지는 날까지’보다

‘살아있는 동안’이란 말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내 생애가 다하는 날까지’ 온몸을 불살라 살았으면

명(命) 받은 나의 존속 기한까지 후회 없는 

삶을 이어왔을 테니까. 

그날 이후에도 태양은 뜨고 지는 날이 계속되겠지만.      


‘사는 게 뭔지’라고 투덜거리며 살아도

안갯속 같은 모호함을 벗기고자 애써 살았다면.

또 모호함 때문에, 모호하지 않게 하고자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살았다면.      


살아 있는 동안 즉 숨 쉬는 동안 희망 속에서 

누가 뭐래도 창조적인 삶을 살았을 테니까.     


뭐, 창조적인 삶이 별것 있나?     


모호함 속에서도 낙관적이고, 신뢰할 줄 알고, 

관심이 넓고, 호기심 많은 생활을 하였다면 

그게 나름의 창조적인 삶이겠지!?     


또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 합리적이다, 비합리적이다, 

여당 편이다, 야당 편이다 등 가치 잣대에 주눅이 들기보다는 

뛰어넘으려 애썼다면 소리쳐 외쳐볼 만하지 않은가?     


누가 뭐래도, 나는 창조적인 삶을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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