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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18. 2019

직장인을 키운 건 팔 할이 불안함이다

제가 이룬 것보다 항상 더 많이 불안하게 하소서

불안할 수밖에 없는 직장인의 운명


나는 불안하다.

아니, 불안해왔고 불안해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불안할 것이 뻔하다. 사람 본연으로서의 불안함도 있지만, 지금은 직장인으로서의 불안함이 그것을 더 앞선다. 뒤처지면 어쩌지, 더 높은 곳으로 가지 못하면 어쩌지, 월급을 받지 못할 상황이 오면 어쩌지, 연봉 성과 등급을 좋게 받지 못하면 어쩌지, 이번 보고서가 제대로 통과 못하면 어쩌지 등. 하루 종일을 불안해하고도 남을 운명에 처한 것이 직장인의 운명이니까.


어느 하루, 그 어떤 큰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다.

그때는 여지없이 마음 한 구석에 불안이라는 녀석이 스멀스멀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사방이 벽이 되어 나를 죄어오는 느낌이 들거나, 주위 몇몇 사람의 유쾌하지 않은 반응이나 말투는 마치 온 세상이 쓰나미가 되어 나에게 몰려오는 것 같다.


'불안'은 말 그대로 '안심이 되지 않은 심리적 상태나 감정'을 말한다.

프로이트는 저명한 심리학자답게 이를 좀 더 멋지게 표현했다.


자아가 위험을 느끼면서 자신의 힘으로 감당해 낼 수 있는지 아닌지를 저울질하여 자신의 무력을 자인할 때 나타나는 상태

- 프로이트 -


불안은 왜 생길까?


심리학이나 현대 과학에서도 불안의 원인을 완벽하게 파악하거나 정의한 사례는 없다.

다만, 스탠퍼드대 생명공학부 김성연 박사와 칼 다이서로스 교수는 뇌에서 불안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규명해 발표한 적이 있다. 뇌의 특정 부위 (분계선조침대핵)의 타원핵과 이를 둘러싼 바깥 부분이 자극의 균형을 이루며 불안을 강화하거나 감소시킨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불안의 원인과 메커니즘을 완벽히 파악해낸 것은 아님을 볼 때, 불안은 좀 더 본능적이고 자동적인 고차원적 마음의 작용이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불안은 생명체로 하여금 위험을 감지하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다.

그리고 생명체는 생존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불안감을 유지하고 있어야 천적이 나타나거나, 어떠한 위험 상황에서 민첩하게 행동하거나 기지를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 이렇게 보면, 불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겪어본 것에 대한 불안, 겪어보진 않았지만 간접 경험을 통해 알게 되거나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되는 불안.


즉, 불안은 스스로를 지키고 살아남으려는 아주 중요한 일종의 사전 경고 시스템인 것이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불안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스티브 잡스의 창의적 아이디어는 시장성이 아니라 바로 휴대폰에서 단추를 없애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보도한 적이 있다.

그 뉘앙스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각에서는 고(故) 스티브 잡스가 '단추 공포증'에 시달린 것으로 추정한다는 재밌는 해석이 있다. 실제로, 공식석상에 나타난 그의 모습을 보면 단추가 없는 옷차림이 대부분이고 버튼이 수십 개 되는 현대식 리모컨보다는 6개의 버튼으로 이루어진 구식 리모컨을 고집했다고 한다. 즉, 단추나 수많은 버튼을 보면 불안해지고 이러한 공포심을 회피하려는 스티브 잡스의 성향이 아이폰을 만들어냈다는 주장이다.


그에 대한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주어진 주장 내에서만 시사점을 끄집어내 본다면 스티브 잡스의 불안이 아이폰을 탄생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인 스트레스가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


직장인은 스스로를 돌아볼 때,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불안이 내게 도움이 되어 왔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불안해서 일찍 일어나고, 불안해서 일을 더 하고, 불안해서 어학 공부하고, 불안해서 더 인정받으려 했던 내 모습이 떠오르면서. 일요일 한 낮,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무언가 허무하고 이대로 주말을 보내면 어쩌면 나는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함에 영어 단어를 하나 더 외우거나 밖으로 나가 뛰면서 운동을 했다.


결국, 직장인인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불안'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을 떠올려, '직장인의 자화상'으로 다시 고쳐 보면 어떨까 한다.


나는 직장인이다. 밤이 깊어도 불안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상사와 높고 높은 목표가 서 있을 뿐이다.
[중략]
스무 해가 넘는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불안이다.
직장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불안을 읽어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불안을 듣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중략]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오늘도 직장인의 삶을 살아 낸다.


헐떡거리는 삶이고, 불안에 불안을 달고 살지만.

뉘우치지 않을 거란 다짐에 나는 울컥한다.


그러니, 불안에 압도당할 필요 없고 그것을 온전히 친구 삼거나 도움이 되는 지병으로 맞이한다면 좀 어떨까.

어차피 불안할 존재라면, 직장인이라서 더 그렇다면 그 불안함을 마음껏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결국은 나를 지키려 발버둥 치는 것이니.


그런 의미에서 미켈란젤로가 말한 '주여, 제가 이룬 것보다 항상 더 많이 갈망하게 하소서'란 말을 좀 다르게 표현해 보고 싶다.


'주여, 제가 이룬 것보다 항상 더 많이 불안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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