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과 떡국은 불꽃놀이와 올리볼렌으로!
네덜란드의 새해는 한국보다 8시간 느리다.
그래서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고 난 뒤, 8시간이란 시간을 번 듯한 재미있는 착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새해맞이는 '일출'과 '떡국', 이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겠지만 네덜란드에서의 신년은 '불꽃놀이'와 '올리볼렌'으로 함께 한다.
테러(?)를 방불케 하는 불꽃놀이
한국의 민방위 훈련을 모르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모든 사람들이 대피하자 전쟁이 난 줄 알고 기겁을 했다는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상황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약 네덜란드에서 새해로 넘어가는 마지막 날에 행해지는 불꽃놀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면, 자칫 새벽까지 이어지는 불꽃놀이에 테러가 일어난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불꽃놀이는 한국과는 다르게 개인적으로 이루어지고, 또 그 불꽃놀이의 규모나 파워가 한강 주변에서 피리소리를 내며 날아가다 퍽하고 터지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사방팔방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이 불꽃의 향연과 소리는 새해로 넘어가는 새벽까지 이어진다.
저녁 7시가 되면 아이들을 재우고,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가득하다면 더욱더 놀랄 일이 되고 만다.
불꽃놀이에 대한 안 좋은 추억, 그러나 여전히 신년을 대표하는 의식!
한국에서 불꽃놀이라 함은 '한 화약회사에서 주최하는 한강 근처에서의 큰 불꽃놀이'와 '강가 또는 펜션 어디 근처에서 소소하게 즐기는 작은 개인 불꽃놀이'일 것이다.
네덜란드도 신년맞이 거대한 불꽃놀이가 암스테르담 한 가운데서 실시된다. 다만, '개인 불꽃놀이'가 그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흡사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불꽃놀이 기구도 있고, 손이 잘려나가거나 큰 화재나 폭발이 일어날 것에 대한 경고를 TV를 통해 매년 내보내고 있을 정도다.
실제로 2000년 5월 31일은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이다. 불꽃놀이가 인기를 얻게 되자 회사 간의 경쟁이 심해지고, 더 많은 재고를 무리하게 쌓아두게 된 Enschede 부근의 한 불꽃놀이 제조 업체 창고에 불이 났다.
이 불은 큰 폭발을 불러왔고 19명 사망, 950여 명 상해, 그리고 1,000여 가구가 다 타 버리고 1,250명이 집 없는 난민이 되어버린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폭발음은 60킬로미터 밖에서도 들렸고, 화마가 휩쓸고 간 그 모습은 흡사 전쟁터와 같았다. (관련 영상 Big Fireworks explosion at Enschede Netherlands)
그럼에도, 불꽃놀이는 신년을 맞이하는 큰 행사이기 때문에, 네덜란드 사람들은 12월 28일부터 약 사흘 동안 폭죽과 불꽃놀이 용품을 정부가 허가한 상점에서 살 수 있다. 16세 이상에게 판매하되 1일 당 최대 구매량은 25킬로그램으로 제한된다.
시간 또한 제한되는데, 불꽃놀이 폭죽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한 해가 지나가는 12월 31일 마지막 날부터 새해 새벽 2시까지고, 이를 지키지 않다 발각되면 큰 벌금이나 사회봉사 활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통상 12월 28일부터 1월 1일 새벽 오전 5시까지도 불꽃은 펑펑 터지곤 한다.
참고로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 불꽃놀이에 가정당 평균 150~350유로를 지출한다고 하고, 지인 중 한 명은 대단위 가족으로 이미 800유로 이상을 구매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기 마련, 독일과 벨기에 블랙마켓에서 거래되는 다이너마이트급의 불꽃놀이 장비는 국경부터 엄격하게 통제되지만 간혹 그 위력적인 것들이 동네에서 한두 번은 터지곤 한다.
지금도 집 바로 앞 뒤에서 터지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과장을 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이 의식은 아마도 새벽까지 계속될 것이다.
사실, 네덜란드 친구들에게 물어도 왜 이러한 전통이 생겨났는지는 명확지 않다. 불꽃놀이야 세계인지 즐기는 것이라 쳐도 이렇게 개인적으로 약간의 과한(?) 불꽃놀이를 즐기는 것은 중국이 대표적인데 네덜란드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게 된 건 의외이긴 했다.
그저 개인적인 생각으론, 역사적으로도 매우 평화주의 적이고 활기차지만 마음 차분한 네덜란드 사람들이 일 년에 한 번 마음껏 그 욕망을 분출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시간과 의식이기에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떡국 먹고 한 살, 올리볼렌 (Olie Bollen) 먹고 한 살!
한 해의 마지막 날 열심히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 동료가 큰 쟁반에 올리볼렌을 한가득 가져와 내민다.
Happy new year의 인사와 함께 새해에는 올리볼렌을 꼭 먹어야 한다는 그것이 우리의 떡국을 생각나게 했다.
'올리볼렌'은 말 그대로 '기름 공'을 의미하고, 기름기 가득히 튀겨서 설탕 파우더를 뿌려먹는 빵이다. 네덜란드에서는 겨울에 거리 곳곳에서 올리볼렌 판매 트럭과 거기에 늘어진 긴 줄을 쉽게 볼 수 있다. 친구들의 페이스북에는 각자 집에서 만든 올리볼렌 사진들이 여기저기에 올라온다.
올리볼렌은 밀가루 반죽과 계란, 그리고 이스트를 넣어 뜨겁고 깊은 기름에 튀기는데 이는 아주 오랜 옛날 네덜란드 지역의 게르만인들이 전통적으로 해 먹어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크리스마스와 새해 즈음에 먹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한 겨울에 허공을 날아다니는 죽음의 신 '페히트라'가 큰 이유였다. 페히트라는 큰 칼을 휘두르며 사람들의 배를 가르고 다니는데, 올리볼렌을 먹은 사람들은 그 지방과 기름기 때문에 페히트라의 칼이 배를 베지 못하고 비껴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모습은 달라도, 아마 그 마음 가짐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새로운 기대, 가족의 안녕과 행복, 그리고 개인의 소망에 대한 간절함 등.
시간은 언제나 영원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으나, 사람들이 함께 정한 1년이라는 시간 안에서의 마지막 날과 새로운 날을 구분하는 것은 어쩌면 삶에 쉼표가 필요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새해 복 많이 받았으면 한다.
네덜란드의 불꽃놀이로 인해 누구도 다치지 않는 날이 되기를 바라면서.